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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압도하는 작은 「빨간피터」…추상미 혼신연기 주목

입력 | 1997-11-29 08:37:00


갈색 반코트에 찰랑거리는 생머리. 폴라 티로 목을 감싼 채 잔뜩 웅크린 모습은 더욱 작게 보인다. 탤런트 추상미(25). 고양이를 닮은 눈빛에는 사람을 빨아들이는 힘이 실려 있다. 홍익대 불문과 4학년 때 연극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연극 무대에서 세번의 겨울을 보냈다. 지난해에는 김갑수와 공연한 「바람분다 문 열어라」로 서울연극제 신인상을 받기도 했다. TV의 힘 때문인가. 고정출연중인 SBS 시트콤 「뉴욕 스토리」에 앞서 단 3편의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연극계의 유망주가 아니라 탤런트로 기억된다. 일일극이나 미니시리즈도 아닌 단막극이 전부다. SBS 「70분드라마」의 「수취인 없음」 「토큰 박스」, MBC 「베스트극장」의 「네발 자전거」. 팬들은 그 짧은 만남에서도 놀랍게도 생생하고 강렬하게 그를 기억한다. 가까운 거리의 물체만 볼 수 있다는 망막 색소변성증 환자(토크 박스)나 친구의 약혼자를 사랑하는 마음 약한 만화가(네발 자전거) 등 그의 애잔한 분신들이 만들어낸 연민 때문일 것이다. 작은 몸 속에 감춰진 매력이 영화 「퇴마록」의 주인공 캐스팅으로 이어졌다. 퇴마사 승희역을 맡아 안성기 신현준과 공연한다. 추상미의 아버지는 지금도 일인극 「빨간 피터의 고백」의 배우로 유명한 고 추송웅씨. 어머니 김정신씨도 연극인 출신이고 작은 오빠 상록씨도 연극계에 몸을 담고 있다. 아버지의 그림자는 어쩔 수 없이 그를 깊고도 넓게 감싼다. 『아장아장 걸어다니면서 아빠의 첫 작품을 만났고 연극을 보며 철이 들었어요. 테크닉이 아니라 몸 속에 담겨 있는 모든 것을 송두리째 팬들에게 줘야한다는 게 무언의 배움이었죠』 핏줄을 연결시키는 질문이 부담스럽지만 피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젊은 사람들에게서 잊혀져가는 아버지를 되살리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연극 드라마 영화 등 장르나 인물의 성격을 가리지 않을 것』이라며 『다양한 캐릭터를 스펀지처럼 소화할 수 있는 진짜 연기자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아직은 사람들이 알아보면 기분이 좋아요. 하지만 바쁜 일정 때문에 옛날 버릇처럼 강가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비구경을 못해 아쉽습니다』 〈김갑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