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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겔-한승주교수 대담]21세기 한반도가 나아갈 길

입력 | 1997-08-29 20:23:00


《21세기를 눈앞에 둔 지금 한반도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폐쇄적인 공산주의 체제를 고집하고 있는 북한이 극심한 식량난과 잇따른 고위인사의 망명으로 위기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한과 미국 중국간의 4자회담의 성공적인 진행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의 안정과도 직결되어 있어 향후 몇년이 중요한 시기로 부각되고 있다. 방한한 하버드대의 에즈라 보겔 교수와 전 외무부장관인 韓昇洲(한승주)고려대교수의 긴급대담을 통해 한반도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보겔교수는 일본문제 전문가이며 아울러 국제질서에도 깊은 식견을 가진 세계적인 석학이다.》 韓교수〓북한은 현재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극심한 식량난과 黃長燁(황장엽)전노동당비서에 이어 장승길 이집트 주재 북한대사까지 망명하는 등 고위인사의 탈북과 망명이 잇따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체제개혁이나 개방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보다 공격적인 정책들을 펼 것인지에 대해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향후 몇년간의 북한의 동향이 극히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어떤 길을 걷게 될 것으로 보는가. ▼ 北정권 정통성 확보 못한듯 ▼ 보겔교수〓김정일은 아직 정통성을 확고히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유훈통치」를 들고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 것 같다. 정통성없는 정권이 주도적인 개혁을 실시하기란 좀처럼 쉽지않다. 다만 식량난은 북한을 움직이게 할 가능성이 크다. 식량은 바로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지난 78년 중국의 등소평이 개혁 개방정책을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한 것이 미국과의 수교였다. 이 점을 북한당국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시급한 식량난의 해결 등 체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개방정책으로 갈 가능성도 높다고 본다. 韓교수〓지난 94년10월 「美―北(미―북)제네바합의」에 따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발족시켜 추진하고 있는 북한 경수로사업도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남북한이 국제사회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인적 물적교류를 넓힘으로써 자연스럽게 북한을 밖으로 이끌어내는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경수로 사업과정 동안 북한이 「돌발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이다. 미국은 KEDO의 활동에 어떠한 의미를 두고 있는가. 보겔교수〓경수로 건설공사의 일차적인 목표는 북한의 전력난 해소를 위해서다. 일부에서는 북한에 경수로를 건설하는 것이 과연 경제성이 있느냐고 지적하기도 한다. 물론 경수로 건설은 경제성면에서는 회의적이다. 그러나 KEDO의 역할은 많은 성과를 거둬왔고 앞으로도 거두리라고 생각한다. 경수로가 북한의 핵에너지 개발 동결을 조건으로 시작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전력공급이라는 경제적인 요인 못지않게 안보적인 고려에 의해 출발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韓교수〓한반도의 안정은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한미일간의 관계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그런데 한미, 미일간 안보관계는 공고하지만 한국과 일본간의 안보협력관계가 약해 3국간 안보협력체제의 취약한 부분으로 지적되고 있다. 보겔교수〓한일간 안보관계가 지금보다 향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보협의기구까지 발족시키지는 않더라도 체계적인 협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한가지 지적해야 할 것이 있다. 한미일 3국간 안보관계가 공고해지는 것은 중국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3국 안보체제가 강화될수록 중국에 대항하는 성격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결국은 현재 4자회담이 진행되고 있지만 일본과 러시아까지 함께 참여, 6개국이 한반도 안정에 관한 논의를 하는 장을 마련하면 한국과 일본이 보다 자연스럽게 안보협력과 관련한 논의를 진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韓교수〓지난해 4월 미국과 일본이 채택한 「미일공동안보선언」과 최근 「일본방위 가이드라인」개정을 통해 일본 자위대의 해외파병 근거가 마련된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이나 중국 등 과거 일본과 특수한 역사적 관계를 맺었던 국가들에서 일본의 재무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보겔교수〓미국의회 등에서는 지난 91년 걸프전을 치르면서 「왜 우리나라 젊은이들만 피를 흘려야 하나」라는 문제가 제기됐다. 일본도 유엔 안보리상임이사국 피선을 눈앞에 둔 만큼 국제사회의 역할에 걸맞은 기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앉아서 돈만 대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인식이 높아진 것이다. 또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긴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미국과 일본간의 구체적 작전수행과 관련된 세부방안이 필요하게 됐다. 증강된 미일 안보관계의 정립은 이같은 배경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냉전시대 소련이라는 가상의 적이 사라진 이후 △완전 무장해제 △재무장 후 군사대국지향 등의 주장도 제기됐다. 그러나 결국 미국과의 안보협력을 유지 강화하는 쪽이 「현실적」이란 결론이 내려졌다. ▼ 中 통치방식 아직은 불안 ▼ 韓교수〓국제통화기금(IMF)은 앞으로 30년후면 구매력 평가기준으로 중국의 국내총생산이 미국의 그것을 넘어설 것이라는 연구보고서를 낸 바 있다. 미국내에서는 중국의 경제개발을 도와 민주주의를 바라는 중산층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경제력과 군사력을 겸비한 중국이야말로 미국의 잠재적 경쟁상대이기 때문에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은 미국에 있어 어떤 국가인가. 보겔교수〓많은 미국인들이 지난 89년 천안문 사태의 생생한 기억을 갖고 있어 중국의 통치방식에 대해 불안해 하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중국은 더할 나위없이 매력적인 파트너이자 거대한 소비시장이다. 또한 현대화된 군을 보유한 13억 인구의 중국은 군사전문가들에게는 가공할 만한 상대다. ▼ 美 경제호황 창의력에 바탕 ▼ 韓교수〓최근 미국의 경제는 유례없는 성장과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그 원동력은 무엇인가. 보겔교수〓90년대 중반이후 미국경제가 다시 부흥하고 있는데는 대학과 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연구개발 작업이 활발히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또 미국의 노동시장은 창의력에 바탕을 둔 유연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다운사이징(조직감축) 등이 필요할 때 원활히 대응할 수 있어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韓교수〓끝으로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정보화혁명이 국제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보겔교수〓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사고가 전세계 안방으로 파고들고 있다. 컴퓨터통신 등을 통해 국경을 넘는 정보확산은 민주주의의 전파 및 폐쇄적인 국가들을 개방화시키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확신한다. 이제 단순한 대량생산을 통한 성장전략은 고도의 창의력과 유연성을 요구하는 정보산업시대에서는 발상의 전환이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한 국가내에서도 국가가 모든 정보를 통제할 수 없는 시대가 오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韓교수〓귀중한 시간을 할애해 고견을 들려주어 감사하다. 〈정리〓구자용·김승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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