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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起亞좌초에서 교훈 얻자

입력 | 1997-07-16 20:43:00


기아그룹이 채권은행단에 의해 부도방지협약 대상으로 지정된 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 충격이 모처럼 회생기미를 보이고 있는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이 걱정스럽고 이로 인해 한국경제의 대외신인도가 추락하지 않을까 두렵다. 기아(起亞)는 매출액 기준으로 국내 8위의 대그룹이다. 5천여 협력 및 하청업체의 연쇄도산과 금융경색, 한국경제 전반에 미칠 파장에 대비한 긴급대책이 시급해졌다. 기아그룹이 자금위기에 몰린 것은 특수강 등에 대한 무리한 투자와 아시아자동차 ㈜기산 등 3개 주력 계열사의 눈덩이 적자가 직접 원인이었다. 9조원이 넘는 금융부채, 불황과 수출부진도 자금경색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삼성의 자동차산업 구조조정 불가피론을 시발로 금융기관들이 시중 루머에 흔들려 자금을 회수하고 어음할인 등 각종 대출을 중단한 것도 결정적으로 기아그룹의 목을 죄었다. 주거래 은행인 제일은행은 한마디 사전협의도 없이 기아그룹을 일방적으로 부도방지협약 대상으로 지정했다고 한다. 금융기관들이 기업과 국민경제에 미칠 파장보다 채권확보에 우선하는 관행도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잘못된 관행과 원인들 못지않게 그간의 격렬했던 노사분규가 기아그룹 좌초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는 점을 이 기회에 반성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의 핵심구성원인 기아그룹 노조는 그동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격렬한 노사분규를 주도했다. 기아자동차 노조는 지난 94년 이후 해마다 파업을 계속했다. 지난해 6월에도 임금 및 단체협상 결렬로 보름이나 파업을 벌였으며 금년 초 노동법파동때도 민노총의 총파업에 동참, 15일간 생산라인을 세웠다. 상근 노조전임자만 60여명인 기아자동차 노조의 제동때문에 공장내 인원 재배치마저도 불가능했다는 이야기다. 기아그룹 노조는 얼마전 올 노사협상을 사측에 일임하고 계열사인 아시아자동차 노조는 1천4백명의 감원에도 합의했다. 이번 금융단 결정이 있은 뒤 기아그룹 노조는 그룹회생을 돕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그러나 이미 때가 늦었다. 기아는 임직원이 주식의 14%를 소유하고 있는, 노조가 사실상 주인이자 달리 말하면 주인없는 기업이다.그런 특수여건아래 호황기의 잦은 분규와 노조의 지나친 임금인상 요구가 쌓여 불황기 경영난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반성이 있어야 한다. 기업은 노사의 공동생산체이자 생존공동체다. 기업이 제삼자에 인수되면 근로자만은 살아남는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기업이 망하면 근로자도 설자리를 잃는다. 기아그룹 좌초가 몰아올 파장은 심각하다. 당장 5천여 협력업체의 연쇄부도가 걱정이다. 금융권의 부실화와 시중자금 경색, 금융산업과 한국경제의 대외신용실추도 문제다. 그 파장을 최소화하는 데 정부와 금융권 그리고 기아그룹노사가 합심 협력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기업의 부채축소노력과 함께 기업이 경기순환적인 자금경색을 견딜 수 있게 금융관행을 고치고 사회 경제적 구조장치를 마련하는 일도 이 기회에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