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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인성교육현장/친구관계]밸런타인데이는 「사과하는날」

입력 | 1997-03-17 08:25:00


[워싱턴·사이타마〓이인철기자] 미국 워싱턴의 저먼타운초등학교 부속유치원에서는 지난달 14일 밸런타인데이 때 특별행사가 열렸다.

「사과하는 날」로 정해 친구에게 줄 선물을 각자 준비해오도록 했다. 햄버거와 사탕을 가져온 아이도 있었고 어떤 아이는 자기가 아끼는 장난감을 가져오기도 했다.

『여러분, 평소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던 친구가 있으면 선물을 주고 화해를 하세요』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 아이들은 하나 둘 친구들을 찾아 자리를 옮겼다.

칼(6)은 얼마전 친구 마이클(6)과 자리때문에 몸싸움 직전까지 갈 뻔한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경위를 꼬치꼬치 물은 뒤 「대화를 통해 해결한다」며 한시간 가까이 훈계를 했다.

그날은 마지못해 서로 『미안하다』며 악수를 나누긴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 풀리지 않은 감정이 남아있던 터였다.

『정말 미안해. 좋은 친구가 되도록 노력하자』

칼은 마이클이 단 것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초콜릿과 사탕상자를 가져와 마이클에게 건넸다. 공작시간에 직접 만든 종이왕관을 씌워주고 악수도 청했다.

『나는 카드밖에 준비 못했어』

마이클은 쑥스러운 듯 칼을 포옹하면서 『미안하다』고 속삭였다.

3년간 스웨덴에 살았던 尹麟漢(윤인한·43·한국무역투자진흥공사 러시아동구부장)씨는 아들 상일군(13)이 학교에서 동양아이라고 놀림을 받아 학교적응 문제로 고심한 적이 있었다.

특히 이세큐우르라는 아이가 제일 짓궂게 굴었고 집단으로 괴롭히기도 했다. 상일이는 발길로 대항해 싸우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담임은 『자녀의 문제해결방식이 거칠어 부모님의 지도가 필요하다』는 가정통신문을 보내왔다.

이런 일이 네댓 차례 반복되자 「옐로 카드」와 함께 부모가 학교에 나와달라는 통신문을 보내왔다.

『처음엔 우리가 피해자인데 거꾸로 된 것 아니냐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선생님은 누가 먼저 문제를 일으켰든 상관않고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끝나자 옆방에서 기다리던 이세큐우르의 부모를 불러 서로 인사를 시켜주었습니다』

부모들끼리 아이들의 성격 취미 등을 이야기하면서 왜 서로 싸우게 됐는지 알아보라는 것 같았다. 그 뒤 수시로 전화통화를 하면서 두 아이가 잘 지낼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별 문제없이 지낼 수 있었다.

학교의 중재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아들과 이세큐우르 모두 친한 사이인 레이첼이란 여학생을 가운데 자리에 배치, 완충역할을 하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일본 사이타마현 우라와시의 모토부토보육원에서는 아이들끼리 싸우는 것도 중요한 학습과정의 하나.

아이들끼리 싸우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신의 감정은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를 체험을 통해 배우게하는 것이다. 교사들에게는 아이들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그래서 이곳 교사들은 아이들끼리 싸워도 잘 말리지 않는다.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멀찌감치 떨어져서 상황을 관찰하는 것이다. 몸싸움으로 번져도 그렇게 심각하지 않으면 끼여들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선생님이 중재에 나서면 관찰한 것을 근거로 누가 왜 잘못했는지를 하나하나 지적, 아이들 스스로 잘못을 깨닫도록 유도한다.

아이들의 잘못을 좋은 교육기회로 삼기도 한다. 한 어린이는 어항에 세제를 풀어넣어 물고기를 죽게했는데 오히려 칭찬을 받았다.

이 아이는 세제를 타면 물고기가 만드는 물방울이 어떻게 변하는지 궁금했던 것. 어항에 세제를 넣으면 안되는 이유를 설명해준 뒤 『그러나 탐구정신이 뛰어나다』고 친구들 앞에서 칭찬해주었다.

이와모토 사치요원장(50)은 『아이들이 싸우거나 잘못했다고 해서 무조건 나무라거나 말리는 것보다 서로 의사를 충분히 표현하도록 놔둔다』며 『이 과정을 통해 친구가 왜 화가 났는지, 화가 났을 때는 어떻게 친구를 대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터득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또래는 서로 부닥치면서 서로 배운다. 친구간의 갈등을 거친 행동이나 폭력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민주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데 교육선진국들은 관심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