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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의 창/이집트]전화 한대 놓는데 8년

입력 | 1997-03-14 08:29:00


이집트 생활에서 식품문제는 하나의 괴로움이었다. 특수식품은 현지에서 달리 구할 방법이 없어 한국에 갔다오는 인편을 통해 조달하고 있다. 식품수입은 거의 불가능한 셈이다. 국내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비관세장벽 때문인지 법취지대로 국민보건에 대한 위해 여부를 검사하기 위해서인지 몰라도 통관에만 2, 3개월이 걸리기 때문이다. 열대지방인지라 통관이 끝날 때쯤이면 부패 변질돼 있기 십상이다. 하루는 신주단지 모시듯하는 조개젓을 입가심으로 두어점 집어먹고 식탁에 빈그릇과 함께 놓아둔 적이 있었다. 그런데 현지인 파출부가 부엌정리를 하고난 뒤 이게 갑자기 행방불명돼버린 게 아닌가. 그래서 물어봤더니 파출부 하는 말씀 『냄새가 나고 썩은 것 같아 버렸다』는 얘기였다. 그저 망연자실, 할 말이 없었다. 1주에 두차례 시간제로 고용하고 있는 파출부와 관련된 웃지 못할 사례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콘택트렌즈를 보관액이든 용기에넣어 화장실 세면대에 놓아두었더니 청소를 한답시고 렌즈 용기마저 깨끗이 씻어버린 것. 스스로 뭘 잘못했는지 이해도 못하는 판이니 화를 내본들 무슨 소용 있으랴. 그도 그럴 것이 문맹률 50%에 안경을 쓰는 사람조차 드문데다 콘택트 렌즈는 일부 부유층에만 보급돼 보지도 듣지도 못했을 것이니…. 다음날 카이로 시내를 샅샅이 뒤져 어렵게 렌즈를 구한 다음 가격이 파출부의 한달치 월급이라고 들려주자 화들짝 놀라는 그 표정이란. 파출부는 자주 결근을 하는데 긴급연락은 아예 불가능하다. 인구 6천만명에 전화는 2백만대 정도에 불과하고 한번 신청하면 10년을 기다려야 한다니. 좀 지난 얘기지만 전화를 신청하고 10년을 기다리다가 마침내 전화가 나온다는 통지를 받고 너무 기쁜 나머지 숨진 사람의 얘기가 해외토픽으로 보도된 적도 있다. 요즘은 다소 빨라졌는데도 평균 8년은 너끈히 걸린다고 한다. 배정웅 (카이로무역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