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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망명/美전문가 분석]「권력세대교체」위기 느낀듯

입력 | 1997-02-13 20:34:00


[워싱턴〓이재호특파원] 黃長燁(황장엽)의 망명에 대해 미국의 전문가들은 비교적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황의 망명이 북한 권력 내부의 조직적인 반(反) 金正日(김정일)세력의 표출이 아니라면 그의 망명을 북한 내부의 붕괴 조짐과 결부시키는 것은 성급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의 견해를 소개한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평화연구소(USIP)선임연구원 황의 망명은 북한 권력 내부의 세대교체 결과가 아닌가 싶다. 김정일은 주석직 승계를 앞두고 金日成(김일성)세대를 어떤 형태로든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많다. 이 과정에서 황이 소외됐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의 망명이 당장 北―美(북―미)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황의 망명은 북한 권력 내부에 문제가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은 오히려 내부 정리에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될 것이다. 중국은 황의 서울행을 허용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매우 어려운 결정에 직면해 있다. 중국은 아마도 서울과 평양 사이에서 철저한 등거리외교로 득실을 저울질한 후 결정을 내릴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정부는 서울 도쿄(東京)와 긴밀한 공조체제를 유지하는데 문제 해결의 최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래리 닉시 미국의회조사국(CRS)아시아 분석관 황은 주체사상뿐만 아니라 국제관계, 특히 대미(對美)관계에 깊숙이 개입해온 인물이다. 최근 수년간 미국인들의 북한 방문을 뒤에서 기획하고 통제해온 것도 황이다. 망명 동기는 두가지 분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개인적인 심경의 변화고, 두번째는 자신이 숙청의 대상으로 지목됐을 가능성이다. 국제문제에 정통한 황은 어쩌면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의 한계를 절감하고 고민했을 가능성이 많다. 중요한 것은 그의 망명이 조직적인 반 김정일세력의 표출인가 하는 점이다. 단순히 개인적인 망명이라면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만약 조직적인 저항의 일부라면 붕괴나 내부 혼란의 한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중요한 것은 조직화 여부다. 毛澤東(모택동) 치하의 중국에서도 1950,60년대 3천만명의 인민들이 기아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반(反) 모택동 세력이 조직화되지 못해 모(毛)체제는 건재했다. 북한은 중국에 대해 황을 서울에 보내지 못하도록 필사적인 압력을 넣겠지만 중국으로서는 한국과의 관계도 매우 중요하다. ▼金亨國(김형국)아메리칸대 교수(동북아정치) 김정일은 주석직 승계를 앞두고 주체사상을 갈음할 새로운 지도이념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황은 「실패한 주체사상」의 주창자로서 그 효용이 다한 게 아닌가 싶다. 황의 망명은 북한체제의 변화와 붕괴가 밑(대중)으로부터 오는게 아니라 위(권력내부)로부터 오고 있다는 신호다. 이 점이 황의 망명이 주는 가장 큰 의미다. 다음에는 밑으로부터의 일탈이 있을 것이다. 황의 망명이 납치극이라는 북한의 주장은 내부 무마용이다. 따라서 북한은 끝까지 납치극을 주장할 것이고 이로 인해 남북관계도 경색 일변도로 갈 가능성이 높다. 대신 북한은 대미관계 진전에 더 열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황의 망명으로 이미 체제 동요의 일단을 드러낸 북한으로서는 유일한 탈출구로서 미국의 존재가 더 절실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