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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휴게실]장편 「전함 큐브릭」쓴 신인 김이태씨

입력 | 1997-02-10 20:07:00


[鄭恩玲 기자] 최근 첫 장편소설 「전함 큐브릭」(고려원 간)을 내놓은 신인작가 김이태(32)의 목소리는 단정적이고 뜨겁다. 80년대를 뒤흔들던 함성이 사라진 뒤 뒤틀린 자기내면을 응시하거나 세기말의 허무감을 토로하는 낮은 목소리들이 풍미하는 우리 소설계에서 근래 보기 드문 「격정」이다. 「전함 큐브릭」의 주인공은 무명음악가들. 악보를 거부한 채 오직 자기 내면의 소리에 따라 끔찍한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는 피아니스트 익희와 타고난 절대음감과 목소리때문에 대중가수가 됐지만 지금은 노래를 포기한 아버지 다른 여동생 애자가 이야기를 이끌고 나간다. 친남매이면서도 서로를 「가짜음악가」라고 몰아세우는 두 사람은 그러나 지극히 닮음꼴이다. 익희는 음악을 팔지 않기 위해 막노동으로 돈을 벌어 생계를 잇고 한때 TV와 일본무대에까지 진출했던 애자는 끝내 인기있는 대중문화상품이 되지 못한 채 일본 요코하마의 퇴락한 재즈바에서 그토록 갈구하던 「진짜 노래」를 찾는다. 그러나 익희와 애자가 평화로운 일상과 맞바꿈한 「진짜음악」은 결코 두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모두가 잠든 밤 혼자 헤드폰을 끼고 피아노를 두드려대는 오빠 익희의 고독한 뒷모습을 바라보던 애자는 『우리는 결국 이 무자비한 소리와 음들의 노예일 뿐』이라며 치사량의 수면제를 삼킨다. 비극적인 이들 남매의 예술에 대한 자세는 매니저 황보의 독백으로 요약된다. 「…예술은 고통스러워야 해. 타인에게 안겨주는 즐거움을 그들 자신은 느낄 수 없어야 그게 공평한 것이다…」. 95년 「문학사상」신인상으로 데뷔한 작가 김씨는 현재 일본 기타큐슈대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탈출하듯 남미로 떠났다가 일본에 정착한 김씨는 소설이 만화에 밀리고 소일거리 이상의 취급을 못받는 외국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절대」의 경지를 꿈꾸는 「전함 큐브릭」의 상처받은 예술가들을 그려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