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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노예」한 초등학교 5학년어린이의 하루

입력 | 1996-11-03 20:36:00


부모들의 지나친 교육열이 오히려 어린이들을 병들게 한다.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하는 고교생들이 과외를 받는다면 모르겠으나 한창 뛰어놀며 자라야 하는 초등학생들이 매일 매일 「과외수업의 포로」가 돼 지내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서울 송파구 A초등학교 5학년인 朴모양(11)의 하루는 학교수업과 일주일에 7개 과목의 과외를 받는 것으로 채워지고 있다. 서울 강남지역의 초등학생들이라면 보통 일주일에 3,4개 많게는 7,8개 과목까지 과외를 한다. 지난 1일 朴양이 학교에서 6교시의 수업을 받고 집에 온 것은 오후 3시. 집에 오자마자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아파트 근처의 테니스장에 가서 테니스과외를 받는다. 벌써 두달째 테니스를 배우고 있다. 40여분 정도 테니스를 하고 집에 와 샤워를 한 뒤 오후 4시쯤 집을 나선다. 조그만 가방을 들고 아파트 앞 버스 정류장에서 영어학원의 셔틀버스를 탄다. 20여분 거리에 있는 학원에서는 외국인 선생님과 함께 한 반에 6,7명이 영어회화를 배운다. 朴양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영어를 배워왔기 때문에 지금은 웬만한 일상 대화는 영어로 할 수 있는 수준이다. 오후 6시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난 뒤 다시 집을 나섰다. 아파트 옆동에 사는 친구집으로 글짓기 과외를 하러가야 하기 때문. 1시간동안 또래 2명과 함께 국문학과 대학생 언니에게서 글짓기를 배운다. 글짓기과외에서 돌아오자 얼마 안 있어 『딩동』하는 벨소리가 울렸다. 산수 과외 선생님이다. 2시간동안 하는 산수과외는 몸도 피곤하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 과목이라 눈은 감겨오고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선생님 좀 놀다 하면 안돼요』하고 조르지만 선생님은 밖에 있는 엄마의 눈치가 보이는지 들은 체도 안한다. 산수과외가 끝난 것은 밤 10시반. 그러나 朴양은 아직 잘 수가 없다. 학교에서 내준 국어숙제와 산수 연습문제 풀기 숙제가 남아있기 때문. 자정이 다 돼서야 겨우 숙제를 마치고 내일 학교에 갈 책가방을 쌌다. 『저만 이렇게 하는 게 아녜요. 우리 학교 친구들 모두 5∼10가지 정도 과외를 하고 있지요. 일주일에 10가지를 하는 애도 있고 심지어 밤 12시반까지 과외를 하는 경우도 있어요』 朴양이 다니는 학원과 과외는 일주일에 총 7개. 산수 글짓기 미술 플루트 영어회화 영어문법 테니스 등이다. 친구들과 맘놓고 놀아볼 틈도 없다. 과외는 주말에도 계속된다. 토요일 일요일에는 낮에 영어학원에 갔다가 저녁 6시부터 4시간동안 미술학원을 다닌다. 『남들도 다하고, 엄마가 다니라니까 다니는 거죠. 항상 엄마가 (배울 과목을) 정해주죠. 미술하고 플루트 연주는 재미있지만 산수나 영어문법 등은 정말 하기 싫어요』 개인사업을 한다는 朴양의 아버지가 지불하는 朴양의 총 과외비는 산수 30만원, 영어회화 학원 40만원, 플루트 글짓기 각각 20만원 등 총 1백70만원대. 웬만한 월급쟁이의 봉급 수준이다. 朴양에게 지금 제일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묻자 『그냥 친구들이랑 어울려 노는 것』이라고 짤막하게 대답했다.〈田承勳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