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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200)

입력 | 1996-10-30 20:46:00


나에 대한 타당한 오해들〈7〉 『주문하시겠어요?』 이 말을 하면서 종업원은 자기가 이 주문을 받기 위해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에 대해 생색이라도 내려는 것인지 긴 한숨까지 내쉰다. 『뭐 할래요?』 『글쎄요』 나는 어색함도 눅일 겸 술을 마시고 싶었지만 워낙 의례적인 분위기였으므로 애매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현석이 메뉴판을 「음료」가 있는 데서 「주류」가 있는 곳으로 넘기는 것을 보고 적이 안심을 한다. 그러나 현석은 그 길다란 손가락으로 메뉴를 다시 앞으로 넘기더니 『커피 마시죠 뭐』라고 간단히 결정을 내려버린다. 그 말이 마치 이 자리가 공식적인 자리임을 잊지 말라고 선을 긋는 것인 듯해서 나는 제풀에 무안해진다. 같이 커피를 주문한 다음 나는 창밖을 본다. 어두워지고 있다. 바람도 조금 불고. 10월 말이니까…. 고개를 다시 현석 쪽으로 돌릴 때는 나는 내 마음 속에 들어 있던 원래의 건조함을 되찾고 있었다. 『왜 만나자고 하셨어요?』 헛된 희망을 오래 품고 있기 싫었기 때문에 나는 되도록 명료하게 용건을 물은 거였다. 그 말 속에는 왜 나를 만나자고 했는지 알고 싶다는 것 외에는 어떤 감정도 들어 있지 않았다. 『…』 현석은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만 본다. 그리고 약간 차갑게 웃는다. 『한번 만나보고 싶었어요』 또다시 담뱃갑으로 뻗는 그의 손은 가볍게 흔들리지만 덧붙이는 목소리는 냉랭하다. 『부담스럽게 할 생각은 없어요』 그런 다음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아주 지적인 대화를 나눈다. 인문학적 관심사, 교수 임용에 관한 의견, 개인성의 존중과 정치적 보수화와의 상관성 등등. 우리의 말투는 너무나 정중하고 단어는 신중하게 선택되어 그대로 텔레비전의 대담 프로그램으로 방영해도 좋을 정도이다. 우리는 서로가 보기에도 쉽게 눈치챌 만큼 피곤을 느낀다. 상대가 피곤해 하고 있다는 사실이 피곤을 가중시킨다. 상대를 너무나 만나고 싶어했고 이 자리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컸으며, 이처럼 피곤한데도 불구하고 선뜻 일어나버리지 못할 만큼 미련을 갖고 있고… 그 모든 사실의 확인이 짜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