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통장 한 개 값이 최대 2000만 원까지 치솟으면서, 이를 구하려고 통장 주인을 해외로 데려가 감금하고 고문까지 한 대포통장 유통 조직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금융권의 대포통장 감시망을 피할 시나리오까지 미리 짜둔 것으로 조사됐다.
23일 서울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는 캄보디아 거점 대포통장 유통 조직 총책(30)과 국내외 조직원 11명을 전자금융거래법·국외이송유인 위반 등 혐의로 검거하고 이 중 6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대포통장을 만들어 넘긴 통장 주인 9명 역시 함께 붙잡혔다. 대포통장은 다른 사람 이름으로 만든 뒤 빌리거나 사들인 통장으로, 범죄조직이 추적을 피할 때 쓴다.
이들은 지난해 7월부터 10월까지 텔레그램 채널 등에 ‘출국 조건으로 대포통장을 만들면 최대 4500만 원을 지급한다’는 광고를 올렸다. 해외에서도 인터넷 뱅킹 접속이 원활한 은행에서 만든 통장은 값을 더 쳐준다며 은행명을 거론하기도 했다. 연락해 온 사람에게는 비행기표를 보내 캄보디아로 초청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캄보디아에 도착한 뒤 숙소에 갇혀 협박과 폭행을 당하고 통장을 뺏겼다. 감금 기간은 2주에서 6주였다. 통장 주인 1명은 휴대전화로 숙소와 이동 경로를 몰래 찍었다가 들켜 다른 피해자들이 보는 앞에서 폭행과 고문을 당했다. 그 장면은 조직원 사이에도 공유됐다.
이렇게 빼앗은 통장은 보이스피싱 조직에 한 개에 1000만∼2000만 원에 팔렸다. 총책은 이 돈으로 팀장과 중간 관리책, 유인책, 모집책 등 조직원에게 매달 200만∼400만 원을 주고, 통장 주인을 데려오면 100만∼200만 원의 성과급까지 줬다. 통상 대포통장은 개인 명의는 500만 원, 송금 한도가 수십억 원인 회사 명의는 1000만 원에 팔리는 게 보통이었지만, 최근 들어 가격이 오른 것이다.
이들은 통장이 은행의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에 걸려 입출금이 막히면 통장 주인이 직접 은행에 전화해 풀어 달라고 말하도록 미리 시나리오까지 짜 놓고 피해자에게 외우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통신비 연체로 통장이 압류되는 것을 막으려 연체금을 대신 갚아주기도 했다.
경찰은 캄보디아에 체류 중인 나머지 조직원 2명을 추적하고 있다. 박구락 서울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 6계장은 “여권 무효화 조치 및 인터폴 적색수배를 통해 조직원을 끝까지 검거할 예정”이라며 “통장을 팔거나 빌려주는 행위 자체가 형사처벌 대상이니 ‘고액 지급’ 등 꾐에 넘어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김다인 기자 dao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