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산업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국가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싹수’ 있는 기업을 찾아내고 투자해 미래의 성장엔진으로 육성하는 금융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벤처캐피탈이 키운 미국 ‘실리콘 밸리’의 혁신 생태계를 따라잡으려는 세계 각국 금융회사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그래서 집과 땅을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주고 챙기는 이자가 가장 큰 수익원인 한국 금융산업의 환골탈태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도시국가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6대 주요국의 전체 벤처캐피털 투자액 중 70% 이상을 차지한다. 스타트업 육성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은 싱가포르 은행들은 창업 2년이 채 안된 기업이라도 차별화된 아이디어만 있으면 1억 원 넘는 돈을 선뜻 대출해준다. 싱가포르 도심 ‘수직 스마트팜’을 개발한 혁신기업 등이 이런 지원을 받아 탄생했다.
그러다보니 중국, 동남아시아, 중동은 물론이고, 다수의 한국 스타트업마저 싱가포르로 본거지를 옮기고 있다. ‘제 2의 딥시크’로 불리는 중국 인공지능(AI) 기업 마누스는 지난해 중국에서 싱가포르로 본사를 옮긴 뒤 볼륨을 키워 최근 페이스북·인스타그램 운영사인 메타에 수 조 원의 가치를 인정받고 인수되기도 했다.
경쟁국 금융회사들이 첨단산업과 기업들의 미래에 투자하는 동안 한국 금융권, 그 중에서도 은행들은 여전히 주택담보대출에 의존하고 있다. 국내 은행들의 원화대출금 가운데 주담대의 비중은 31%로 1년 전보다 오히려 비중이 높아졌다. 과도한 기업대출이 문제가 됐던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안전한 부동산 담보대출에 의존한 ‘땅 짚고 헤엄치기’ 영업관행을 30년이 다 되도록 탈피하지 못한 것이다. 위험자본 투자가 본업인 벤처캐피탈들마저 될 성 부른 스타트업을 찾아 투자를 확대하는 대신 자금 회수에 집중하고 있다. 토스, 배달의민족 같은 유니콘 기업의 등장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않는 부동산에 금융자원이 과도하게 묶이면 국가경제의 활력은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5년 마다 1%포인트씩 하락해 이제는 2% 밑으로 추락한 대표적인 이유다. 한국의 금융권도 이제 집과 땅에 묶인 국민의 돈을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미래성장 산업에 흐르게 만들 혁신금융에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Most View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