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종 기수(60)는 한국 경마가 한 사람의 이름으로 기억될 수 있다는 걸 몸으로 보여준 사람.”
박 기수의 ‘정년퇴직 레이스’를 함께 준비한 이신우 조교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렇게 송사(頌辭)를 남겼다. 박 기수는 21일 경기 과천시 ‘렛츠런파크 서울’에서 열린 제6 경주를 마지막으로 정년을 맞았다. 박 기수가 탄 ‘미라클삭스’는 마지막 코너까지 선두를 지키다 결국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 조교사는 “영화처럼 마지막 장면이 우승으로 끝났다면 좋았겠지만 인생이 늘 영화 같을 수 없다. 그래서 이 결과가 더 현실 같았다”고 썼다.
박 기수가 한국 경마에 남긴 기록은 비현실적이다. 박 기수는 총 1만6016번 경주에 나서 그중 2249번 우승했다. 한국 경마 103년 역사상 박 기수보다 우승을 많이 한 사람은 없다. 이전 최다승 기록(722승)과 비교해도 우승 횟수가 세 배를 넘는다. 그러면서 얻은 별명이 ‘경마 대통령’이다.
마냥 순탄하게 달려온 건 물론 아니다. 머리와 팔을 빼고 거의 모든 뼈가 최소 한 번은 부러졌다. 장기 입원만 10번이 넘는다. 1999년 낙마 사고 때는 말이 허리를 짓밟는 바람에 척추압박골절로 10개월간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박 기수는 2017년 동아일보 인터뷰 때 “병문안 온 팬들이 ‘당연히 죽었을 줄 알고 영안실부터 갔는데 안 보이길래 입원실로 왔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박 기수는 사실 말이 아니라 굴착기가 타고 싶었다. 충북 진천군 출신인 박 기수는 고교 졸업 후 상경해 이모 부부가 서울 마포구에서 운영하던 채소가게 일을 도왔다. 그리고 퇴근 후 중장비 학원에서 굴착기 운전을 배웠다. 강원 춘천시까지 굴착기 면허 시험을 보러 갔지만 운전석에는 앉아 보지도 못하고 돌아왔다. 응시 가능 연령에 몇 달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출생 신고를 1년 늦게 한 바람에 ‘호적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적었던 탓이다. 하릴없이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 했다.
그때 이모부가 한국마사회 마포지점에 붙은 기수 모집 공고를 보고 조카에게 도전을 권했다. 키가 150cm도 되지 않는 박 기수는 “기수라는 직업이 있는 줄도 몰랐지만 단신(短身)이 우대받는다기에 끌렸다”고 했다. 재수 끝에 기수 면허를 받은 건 1987년. 이후 39년 동안 매일 오후 9시가 넘기 전에 잠자리에 들어 오전 4시 30분이면 일어났다. 출근 시간은 언제나 오전 5시 30분. 경마계 사람들이 그를 ‘칸트’라고 부르는 이유다.
어디 박 기수뿐이랴. 세상살이란, 어린 시절 짐작도 못 했던 일을 하면서, 때로 넘어지고 쓰러져도, 하루하루 버티다, 언젠가 그 자리를 내어주는 과정인지 모른다. 고대 로마 철학자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는 “사는 법을 배우는 데 평생이 걸리고 죽는 법을 배우는 데도 평생이 걸린다”고 했다. 그래서 어쩌면 완주야말로 가장 위대한 기록인지 모른다. 올해 정년을 맞은 모든 분 앞날에 박수를 보낸다. 정말, 너무, 고생 많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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