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고국에 가서 묻혀야 한다’는 부모님 말씀 따라 한국에 왔지요. 와서 보니 우리 민족은 생명력이 강인해 ‘바위 위에 놓아도 먹고산다’는 말이 맞다고 느꼈습니다.”
12일 인천 남동구 남동사할린회관에서 만난 사할린 한인 2세 한복순 씨(86)는 유창한 한국어로 영주 귀국한 소감을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경남 거제에 거주하던 한 씨 부모는 1939년 강제 징용돼 사할린으로 끌려갔다. 사할린에서 태어난 한 씨는 올 2월 부모의 유지를 따라 한국으로 영주 귀국했다.
일제 패망 이후 소련이 들어서면서 사할린에 강제 징용된 한인들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래도 정체성은 잊지 않았다. 2007년 영주 귀국한 문정현 남동사할린회관 회장(87)은 “가장 서러웠던 것은 무국적과 민족 차별이었다”며 “누구나 할 것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잊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부모는 매일 밤 이불 속에 숨어서 한국 라디오를 들으며 고향에 남은 가족과 친척을 그리워했다. 문 회장은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에서 단속했지만 부모들은 오전 2시만 되면 한국 라디오를 들었다”며 “제사나 생일은 음력으로 지냈는데 달력이 없다 보니 한국 라디오를 듣고 날짜를 맞추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한국의 발전상에 대해 자랑스러워했다. 한 씨는 “특히 한국 문화의 힘을 느꼈다”며 “요즘은 화장품에 대한 인기가 전 세계적인 것 같다. 미국에 사는 손주가 5월에 한국에 와서 한국 화장품이 좋다며 많이 사 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꼭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유일한 사할린 한인회관인 남동사할린회관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작은 행사를 준비 중이다. 문 회장은 “작은 선물로 떡을 나눠 먹으면서 광복절을 기념할 계획”이라며 웃었다.

12일 인천 남동구 사할린경로당에서 사할린 한인 2세 한복순 씨(왼쪽)와 문정현 사할린경로당 회장이 태극기를 들고 서 있다. 한 씨는 올 2월 영주 귀국했다. 인천=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조유라 jyr01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