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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곤 국제전범재판소 부소장 논문 점수 안돼 강단 못서

권오곤 국제전범재판소 부소장 논문 점수 안돼 강단 못서

Posted October. 03, 2016 07:25,   

Updated October. 03, 2016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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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년 가까이 법관으로 쌓아온 경험을 미래 법조인 양성을 위해 쓰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큽니다.”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부소장 출신인 권오곤 김앤장법률사무소 국제법연구소장(63·사법연수원 9기·사진)은 2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권 소장은 서울의 한 사립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으로부터 2016년 9월부터 초빙 석좌교수 자격으로 국제형사법 강의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가 개강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학교로부터 ‘강의 불가’ 방침을 통보받았다. 강의시간도 잡히고 학생들의 수강신청까지 받던 상황에서 대한변호사협회의 법학전문대학원평가위원회(평가위)가 ‘논문 점수 미달’을 이유로 권 소장에 대해 ‘강의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는 이유에서다.

 로스쿨 평가위는 ‘로스쿨의 교육·조직·운영 및 시설 등을 평가’하기 위한 조직이다. 로스쿨 평가를 위한 평가기법 개발, 평가기준 수립 등도 평가위가 담당한다. 평가위는 로스쿨에서 강의를 하기 위해서는 최근 5년간 쓴 논문을 평가해 총점이 150점 이상을 받아야만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논문이 실린 학술지에 따라 차등적으로 점수가 매겨진다. 평가위 기준에 따른 권 소장의 논문점수는 80점에 그쳤다.

 권 소장은 1979년 서울민사지법에서 법관 생활을 시작해 2001년 한국인 최초로 ICTY의 재판관에 선출됐다. 2008∼2012년 ICTY 부소장을 맡는 등 올해 3월까지 15년간 몸담았다. 보스니아 내전 당시 이슬람계 대량학살을 주도한 ‘발칸 도살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세르비아 대통령과 세르비아계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 사건의 재판장을 맡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으로 권 소장은 국내외에서 국제형사법 ‘베테랑’으로 평가받았지만 이러한 실무 경험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권 소장을 국제형사법 강의 적임자로 여겨 수업을 제안했던 학교 측도 변협 평가위의 결정에 따라 “논문점수 기준이 불합리한 걸 알지만 교원 한 명이라도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학교 전체가 기준에 미달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현실상 어쩔 수가 없다”며 권 소장에게 ‘수업 불가’ 방침을 전했다. 이에 권 소장은 “기계적으로 논문에 점수를 매겨 수업 가능 여부를 판단하는 방식은 다소 경직된 제도로 보인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법조계 일각에선 경직된 교원 임용 및 평가 제도로 인해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법조인들이 강단에 설 기회를 잃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한변협 관계자는 “특정인을 위해 예외 조항을 만들기는 어려우나 로스쿨 임용평가제도의 문제점이 없는지 살펴보고 개선 방안을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