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March. 21, 2016 07:14,
Updated March. 21, 2016 07:26
“담담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과 함께 후보에 오르게 돼 기뻤고요.”
파리도서전이 열린 파리 베르사유 전시장에서 18일(현지 시간) 만난 소설가 한강 씨(46)는 수줍은 표정으로 말했다. 노벨 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불리는 맨부커상 후보에 한국인 최초로 오른 소감을 묻자 돌아온 답이었다.
후보작은 ‘채식주의자’. 어릴 적 자신을 문 개가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본 여성이 육식을 거부하고 스스로 나무가 되어 간다고 여기는 내용이다.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 씨(77)의 반응을 묻자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재차 물었지만 끝내 웃음으로 답을 피했다.
그러고는 번역자에게 공을 돌렸다. 번역을 맡은 영국인 데버러 스미스는 자발적으로 ‘채식주의자’의 20쪽을 번역해 영국 유명 출판사인 포르토벨로에 보냈다. 작품성을 알아본 출판사가 그 후 한 씨와 출간 계약을 맺었다.
“문학은 언어의 장벽을 넘을 수 없잖아요. 번역이 그 장벽을 넘게 해주죠. 번역 작업을 지켜볼 때마다 경이로워요.”
프랑스의 대표 서점인 ‘지베르 조제프’에서 한국 작가 책 가운데 ‘채식주의자’가 가장 많이 판매된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처음 듣는 얘기예요. 놀라워요! 인간의 존재에 대한 고민을 극단의 상황까지 몰고 가는 건데, 프랑스 독자들은 일종의 우화로 여기는 것 같아요.”
‘바람이 분다, 가라’ ‘소년이 온다’도 프랑스어로 번역됐다. 이날 한 시간 동안 진행된 사인회에는 독자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졌다. 한 프랑스 여성은 “잡지에 실린 한국문학 기사를 통해 ‘채식주의자’를 알게 됐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 호기심이 생겼다”며 사인을 받았다. 아내에게 선물하겠다며 책을 산 남성도 있었다.
한 씨는 올해 6월 시, 에세이가 결합된 형식의 새 소설을 출간한다. 제목은 미정.
“삶과 죽음, 도시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 속에 앞으로 나아가는 여성이 있고요. 2014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4개월 동안 머물렀는데요, 소설에는 바르샤바와 서울이 교차하며 등장해요.”
새 소설은 내년에 영국에서도 선보인다.
지난해 발표한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의 2, 3부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까지 완성할 예정이다.
“하루하루 글을 쓸때마다 이 글을 완성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써요. 지금은 다음 달에 마감하는 계간지 원고를 무사히 쓰고 싶다는 생각뿐이에요.”(웃음)
파리=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