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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내년 통화정책 완화 공언은 성급했다

Posted December. 25, 2015 08:10,   

한국은행이 어제 금융통화위원회 개최 후 발표한 2016년 통화신용정책 운영방향에서 국내경제의 회복세가 완만하고 물가도 상승압력이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며 통화정책의 완화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이 지난주 기준금리를 올린 뒤 향후 점진적인 상승을 추구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한은은 미국과 다른 방향으로 가겠다는 의미다. 그제 이주열 한은 총재가 미국의 금리인상이 곧바로 한은의 금리 인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 발언의 연장선상이다.

한국 경제가 불황의 어두운 터널 속에 남겨져 있는 국면에서 경기부양은 여전히 필요하다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1천200조원이나 되는 가계부채가 뇌관으로 버티고 있는데다 수출 부진 장기화에 내수 회복세도 장담하기 힘든 난국임을 감안해 확장적 경제정책을 이어갈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내년 기조를 완화라고 못질해 스스로 족쇄를 채운 것은 성급했다는 판단이다.

미국 금리 인상 이후 글로벌 금융질서는 시계 제로의 안개 속이다. 한국 중국 브라질 러시아 등 신흥국들은 최근 미국이 금융위기 직후 뿌린 돈을 거둬들이는 격변기에 한 배를 타고 있다. 미국이 달러를 회수하는 과정에 한 신흥국에 위기가 터지면 위기가 도미노 식으로 증폭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선 한은만 언제까지나 완화적 통화기조를 고집할 수는 없다. 한국에 있던 달러가 돈값 비싼 미국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가려 한다면 한은도 금리를 올려 외국자본의 바지가랑이라도 잡아야 한다.

완화적 기조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도 많이 남지 않다. 금리 정책은 선제적이어야 한다. 신흥국 위기가 터지기 전에 금리를 올려야 자본유출을 막을 수 있다. 한은이 과거 경기를 살린다며 기준금리를 뒷북 인하해 때를 놓친 적이 몇 번인가. 내년 초 신흥국 위기 가능성이 지금보다 크게 증폭되면서 한은이 금리를 올린다면 중앙은행이 말을 쉽게 바꿨다는 비판이 나올 게 뻔하다.

한은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 지금은 정부의 경기부양 노래에 화음을 넣기보다는 글로벌 자금 동향을 추적하며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고 돈을 흡수할 묘수를 짜낼 때다. 이번 통화신용정책 운영방향에서는 불확실성에 대비해 통화정책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겠다는 정도면 충분했다. 정치의 계절을 앞두고 한은이 너무 앞서 나간 것 아닌 지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