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은 2008년 3월 현대자동차와 두산중공업 주주총회에서 정몽구 회장과 박용성 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에 반대표를 던졌다. 비리 혐의로 사법처리 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경영복귀는 부적절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국내 최대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이 대기업 오너의 이사 선임을 반대한 것은 처음이었다. 당시 현대차 지분 4.5%, 두산중공업 지분 2.9%를 보유한 국민연금은 회사 측과의 표 대결에서 패했지만 파장이 컸다.
미국 네덜란드에서는 연기금의 경영 참여가 활발하다. 미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은 실적이 나쁜 CEO의 사임도 요구한다. 우리 국민연금은 2005년 2월 기업 의결권을 적극 행사하겠다고 발표한 뒤 주총에서 반대 의견을 내는 사례가 늘었다. 하지만 경영자 선임 등 민감한 사안에서는 의결권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현대차나 두산중공업 케이스는 극히 예외적 사례다.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거대 권력이 된 대기업을 견제하는 효과적 수단으로 공적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가 가장 적절하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은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차 대한항공 등 139개사에 이른다. 연기금이 주주권을 적극 행사하면 대기업에 영향이 클 것이다. 청와대는 정부와 사전 조율하거나 정책으로 검토하지 않은 곽 위원장의 사견()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재계는 연금 사회주의까지 거론하며 위기감을 표시냈다.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가 다시 거론된 데는 재계의 책임이 크다. 상당수 대기업은 황제 경영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오너 일가의 입김이 지분에 비해 지나치게 강한 것이 현실이다. 대주주가 없는 포스코나 KT 같은 민영화 공기업도 CEO의 전횡을 막기가 쉽지 않다.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가 중립적이고 건전하게 이뤄진다면 이런 폐단을 보완할 수 있다. 이런 의결권 행사가 연금 가입자들의 이익을 가져온다면 가입자들도 좋아할 것이다. 그러나 연기금의 독립성과 전문성이 취약하고 정부와 정치권, 반()기업적 사회단체에 휘둘릴 경우 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폐해가 더 크다. 예상되는 득실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관치()를 막는 보완대책을 마련한 뒤 결론을 내리는 것이 바른 순서다.
권 순 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