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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총리를 구하지 못하는 나라

Posted September. 16, 2010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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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인구 4887만5000명에 국내총생산(GDP) 15위, 수출 9위, 자동차 생산대수 5위를 자랑한다. 취학률, 문자 해독률, 인터넷보급률은 명실 공히 세계 1위다.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확인해주는 수치들이다. 이런 나라에서 정운찬 국무총리 퇴임(8월11일) 이후 1개월, 김태호 총리후보자 낙마(8월29일) 이후 2주가 지나도록 후임 하나 고르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무총리는 헌법(86조)상 행정에 관해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하는 자리지만 역대 정부에서 총리가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한 경우는 별로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도 한 분야에 집중하는 특임총리를 선호한다. 한승수 총리는 자원외교 총리, 정운찬 총리는 세종시 총리였다. 김태호 총리 후보자는 대권후보 세대교체 용도였는가. 자타가 총리감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은 1,2년 짜리 특임 총리를 하기 위해 발가벗기기 청문회에 나서기가 선뜻 내키지 않을 수도 있다.

총리 임명이 늦어지면서 외교통상부를 비롯해 문화관광부 지식경제부 등 수장()이 공석이거나 임시로 잔류하고 있는 부처의 장관직 임명제청도 늦어지고 있다. 졸지에 임시직 장관이 돼버린 사람들은 인사와 정책을 차기로 미뤄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기 어렵다. 정 전 총리를 후임이 임명될 때까지 붙잡아 놓지 않은 것도 잘못이다.

엄격한 도덕성도 총리감이 갖춰야 할 주요한 덕목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고 고결한 성직자를 고르는 일도 아닌데 도덕성만 따지고 정책수행 능력을 뒷전으로 미뤄놓을 수도 없다. 고도의 압축성장을 이루며 달려온 나라에서 티끌 같은 흠도 없는 인물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총리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한 인사는 최근 30여년의 공직 생활을 영수증 하나까지 꺼내놓고 점검해보다 2,3개 대목에서 시비가 걸릴 것 같아 스스로 관두었다고 털어놓았다. 시비 거리가 전혀 없는 무균질 후보자를 찾자면 2030대에서 구해야 할 판이라는 조크가 나오는 판이다. 국민의 기대수준을 잔뜩 높여놓고 총리나 장관 후보자들에게 적용하는 윤리 도덕의 기준을 갑자기 하향조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청와대가 도대체 평소 인사자료를 어떻게 준비했기에 이 지경인지 답답하다. 그렇다 해도 사람이 없다는 말은 국민을 화나게 한다. 인사권자와 인사라인의 제한된 경험과 협소한 네트워크를 통해서만 사람을 찾으려다 보면 답이 나오기 어렵다. 의원들이 시청자의 인기만 의식해 답변 기회도 주지 않고 고위 공직후보자를 짓이기는 청문회 방식에도 문제가 많다. 이것이 각종 선진 지표를 부끄럽게 하는 한국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