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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서 폭사당한 킴 그 일 안시켰더라면 노병의 회한

눈앞서 폭사당한 킴 그 일 안시켰더라면 노병의 회한

Posted May. 03, 2010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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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4월 가평전투

1950년 여름 오타와 인근의 아버지 농장에 있던 빌은 625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행을 결심한다. 아버지와 삼촌은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였다.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이 컸는데 소련 공산당이 남한을 침범했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다음 날 자원했어요.

빌은 캐나다페트리샤보병부대(PPCLI)에 입대해 미 워싱턴 주 포트루이스 요새에서 파병훈련을 받았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연합군이 어려움을 겪던 가평전투에 투입됐다. 중공군의 반격으로 서울이 다시 함락될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었다. 캐나다군과 호주군은 가평계곡을 둘러싸고 중공군 6000명과 대치하면서 혈투를 벌였다. 4월 24일, 25일 이틀 동안 중공군에 포위된 연합군은 밤새워 이곳을 수호해 중공군의 서울 진입을 막았다.

36시간 동안 계속 폭격이 이어졌어요. 소총 하나로 버텼는데 무력하다는 것을 절감했어요.

가평전투 후 그는 상관에게 집요하게 요구해 무게가 18파운드나 되는 브렌 건으로 바꿨다. 이 총은 한 사람이 탄창을 따로 드는 2인1조가 돼야 발사할 수 있다. 훈련 동기생인 존 마틴이 탄창을 들고 다녔다.

1951년 겨울 철원계곡의 악몽

가평전투가 끝난 뒤 배치된 곳은 철원계곡. 무엇보다 살이 에이는 듯한 추위에 시달렸다. 동굴에서 담요 하나로 버티기도 했지만 견디다 못해 벙커를 만들기로 했다.

킴이라는 18세 부대 도우미가 있었어요. 부대 일을 도와주는 수당으로 하루에 주먹밥 1개를 받았지요. 어느 날 내가 킴에게 터키 고기를 주었더니 다음 날부터 나를 터키 터키라고 부르며 잘 따랐지요. 내가 벙커를 만들던 날이었어요. 잠시 쉬는 사이에 킴이 기둥으로 쓸 나무를 들고 올라왔는데 갑자기 휘릭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킴이 있는 곳으로 포탄이 떨어진 겁니다. 킴은 그 자리에서 죽었어요.

함께 같이 생활한 지 3주일 만이었다.

전부 내 잘못이었습니다. 죄책감을 떨칠 수 없어요. 그때 일을 시키지 말았어야 하는데. 빌은 말을 잇지 못했다. 요즘도 킴의 목소리가 들려요. 예를 들어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라도 하면 터키, 천천히(Slow down)!라는 목소리가 귓전에 들려요. 수호천사처럼 말이지요.

절친한 친구 존의 자살

그는 파병 13개월 후인 1952년 5월 귀국했다. 생활은 엉망이 됐다. 만나는 사람 아무에게나 신경질을 부렸고 걸핏하면 사람을 때렸다. 친구들은 그가 625전쟁에 참전했는지도 잘 몰랐다. 당시 캐나다 사람들은 한국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빌에게 전쟁의 기억은 나날이 새로웠다. 전쟁터에 널브러진 중공군 시체가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중공군과 밤새 총격전을 하다가도 다음 날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체를 수습한 날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하루는 시체가 너무 많아 중공군이 시체 수습을 포기하고 가 버린 적도 있어요. 부대장 지시로 중공군 시체를 뒤져 이름을 찾는데 가족과 여자친구 사진, 연애편지, 부적 같은 것들이 나왔어요. 무자비한 이 중공군들도 나랑 똑같은 인간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순찰을 같이 돌던 친구가 나와 2인1조로 브렌 건을 쏘던 존이었습니다.

그러나 존은 귀국 후 다시 군에 입대한 뒤 우울증으로 자살하고 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방황하던 빌에게 존의 죽음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대학을 마친 빌은 1955년 군인이 돼 1985년까지 30년 동안 군인의 길을 걷는다.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에서 평화유지군으로 근무한 뒤 1985년 소령으로 은퇴했다.

인터뷰 당시 주캐나다한국대사관에는 천안함 침몰 때 희생 장병의 빈소가 마련돼 있었다. 그는 너무 슬프다며 거수경례를 했다. 젊은 친구들이 이렇게 생을 마감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북한 소행이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인터뷰를 끝낸 뒤에도 빌은 여전히 킴 얘기를 계속했다.

제발 가족들이라도 만났으면 좋겠는데, 내가 찾고 있다는 얘기가 신문에 나가면 혹시 가족을 찾을 수 있을까요? 59년 전 킴의 죽음은 그에게 영원한 빚으로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