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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백호의 해

Posted December. 31, 2009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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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 백호() 주작() 현무(). 사신도()에 등장하는 네 가지 신성한 동물 중에 유일하게 실존하는 것이 백호다. 호랑이 중에서도 백호는 초콜릿색 줄무늬에 흰 몸빛을 지녀 우리나라에서 영물()로 숭배 받았다. 흰색은 햇빛을 상징해 옛사람들은 백호가 나타나면 왕자는 순해지고, 부자는 욕심을 부리지 않게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현실 속의 백호는 눈에 잘 띄는 빛깔 때문에 다른 짐승을 사냥하는 데 불리했다. 용맹하기 그지없어 신처럼 추앙받으면서도 현실에선 그 신성으로 인해 고통 받은 셈이다.

백호에 양가()의 가치가 있듯 우리민족이 호랑이를 대하는데도 양가의 감정이 있다. 우러러 보면서도 우습게보고 좋아하면서도 무서워한다. 절대적 권위와 힘을 상징해 용맹 명예 권세 관직 군대 승리의 대명사로 쓰이지만 설화에선 그렇게 어리석고 아둔할 수가 없다. 두상에 왕()자를 그린 호랑이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하다니,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을 판이다. 효자를 알아보고 은혜를 갚을 줄 아는 고마운 짐승이면서 때론 탐관오리와 교활, 악독함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용이나 봉황엔 이런 양가성이 없는 걸 보면 우리민족에게 호랑이는 인간적인 존재인 모양이다.

단군신화에서 곰은 쑥과 마늘만 먹으며 백날을 견딘 끝에 웅녀가 돼 단군을 낳았다. 호랑이는 그걸 못 참고 뛰쳐나갔다. 용맹과 민첩함이 지나친 탓일까. 호랑이는 왜 인간이 되지 못했는가를 통해 우리는 호랑이와 인간의 차이를 알아낼 수 있다고 이어령 씨는 십이지신 호랑이에서 말했다. 아무리 힘이 강해도 극기심이 없으면, 그리고 야생적인 자연의 힘보다는 참고 견디고 자신을 다스리는 정신력이 없으면 인간이 될 수 없다.

세상은 다면적이고 모든 것엔 양면성이 있다. 같은 호랑이를 놓고도 호랑이는 썩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와 호랑이도 시장하면 나비를 잡아 먹는다는 상반된 속담이 존재한다. 무엇을 보고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세상이, 삶이 달라진다. 경인년() 역시 다사다난()할 터. 걸림돌은 디딤돌로 다시 보고, 그래도 어려운 건 스스로 다스려가며 보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강구연월(태평성대의 풍요)을 누릴 수 있도록.

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