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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아동 공부방 합천희망센터의 기적

Posted November. 07, 2009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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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장애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춘선 희망합천센터장(40)은 목이 메었다. 센터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말없이 책만 뒤적이던 아이, 규형(가명10)이가 드디어 마음을 연 것이다. 센터에 나오기 시작한 지 10개월 만이다.

규형아, 장애는 잘못이 아니란다. 누구나 언제든지 아플 수 있어.

선생님, 저는 나중에 장애인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규형이의 아버지는 청각장애인,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하반신을 쓸 수 없는 장애인이다. 칠순이 넘은 할머니가 살림을 도맡아 하며 규형이를 키운다. 올해 1월 이 센터장이 처음 본 규형이의 표정은 어두웠다. 친구들과 말도 하지 못 하고 크게 웃는 법도 없었다. 이 센터장이 가장 해보고 싶은 게 뭐니라고 물었을 때도 모기만 한 목소리로 피아노를 치고 싶다고 속삭였을 뿐이다. 경남 합천군 쌍책면. 변변한 영어학원 하나 없는 곳에 피아노학원이 있을 리 만무했다. 이때 쌍책교회 전정태 목사 부부가 교회 피아노로 규형이를 가르쳐 보겠다고 나섰다. 규형이는 일주일에 3회 40분가량 걸어 교회에 갔다. 재능이 뛰어나 금세 악보를 익혔고 지금은 교과서에 나오는 노래는 척척 반주를 해 낸다.

그런데 여름방학이 지나고 규형이가 센터에 나오지 않았다. 집에서 특별히 신경 쓰는 사람이 없다 보니 꾸준히 나오기 어려웠던 것. 이 센터장과 강선희 사무국장(38)이 직접 아버지 어머니를 찾아갔다. 20세 때 교통사고를 당한 뒤 늘 집에만 있었던 어머니는 규형이만은 세상과 어울리며 살 수 있도록 해 주세요라며 이 센터장의 손을 꼭 잡았다. 그렇게 규형이는 세상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규형이가 살고 있는 합천군은 경남 20개 시군 중 재정자립도가 16위다. 65세 이상이 22%나 되고 조손가정과 다문화가정이 많다. 너나 할 것 없이 가족의 힘만으로 자녀를 양육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다.

여기서 합천희망센터가 기적을 만들어 가고 있다. 가회초등학교생과 중학생 64명, 쌍책초등학교생 17명이 학교가 끝나면 희망센터로 뛰어온다. 거의 전교생 수와 맞먹는다. 버스로 15분 거리에 보습학원이 생겼지만 아무도 가지 않는다. 센터에서는 필리핀 이주 여성이 영어를 가르친다. 센터 선생님들이 숙제를 지도하고 학교 선생님들도 정기적으로 방문해 센터 선생님들과 의견을 나눈다.

합천희망센터는 2003년 10명의 여성 농민이 어린이집 하나 없는 마을에 공부방을 세우면서 시작됐다. 강 사무국장은 현재 초등학교 5, 6학년인 두 아들을 낮에 농사를 짓느라고 방치하기 일쑤고 밤에는 피곤해서 공부를 시킬 여력이 없었지만 우리끼리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각각 10만 원을 출자해 동네 제실 관리사무소를 빌렸다. 어머니들은 도배를 했고 아버지들은 나무를 베어 책걸상을 만들었다. 아이 16명이 모였다. 아이들은 통닭이나 피자가 먹고 싶다고 했지만 돈이 없어 간식은 늘 고구마 옥수수였다.

이 센터장이 도둑질 말고 다 해 보았다고 말할 정도로 항상 운영비가 부족했다. 이 센터장은 사회복지사가 공부방을 운영하면 지역아동센터로 등록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직접 자격증 취득에 나섰다.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새 온라인 강의를 들었다. 강 사무국장은 센터 식구들과 회식차 노래방을 찾았을 때에도 이 선생님 혼자 옆방에서 시험공부를 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결국 보육교사자격증 사회복지사자격증을 차례로 취득했고 2007년 지역아동센터로 등록할 수 있었다.

올해는 삼성그룹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우리아이 희망네트워크 사업의 지원을 받아 합천희망센터로 발전했다. 전국에 12곳이 있는 합천희망센터 같은 우리아이 희망네트워크는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빈곤 아동과 가족을 지원한다. 가족 해체를 막아 양육 기능을 강화하고 가족과 이웃공동체를 씨줄 날줄로 엮어 아동 보호 안전망을 구축하는 사업이다. 삼성이 2006년부터 3년간 45억 원을 지원했다. 3년 시한이었지만 올해부터 다시 2단계 사업에 들어갔다. 1463명의 규형이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김선정 팀장은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처럼 지역사회의 참여가 없으면 지속가능한 지원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우경임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