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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미얀마의 꽃

Posted August. 13, 2009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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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치않은 상상이지만 한번 해보자. 세계적으로 제3의 민주화 물결이 일었던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실시된 선거에서 민정당 아닌 야당이 승리했다. 국민은 환호했지만 군부독재정권은 순순히 정권을 내놓지 않았다. 되레 야당 지도자를 잡아 가둔 채 국제사회가 비난을 하든 말든, 민생이 파탄 나든 말든, 여전히 강압적 통치를 하고 있다면 우리는 과연 견뎌낼 수 있을까.

미얀마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 나라다. 1962년 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했고 1988년 8월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것까지는 우리와 비슷하다. 그러나 민주화를 성취한 우리와는 달리 미얀마에선 신()군부가 등장해 평화적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1990년 선거가 있었긴 했지만 야당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가 연금 상태에서 이끈 민주민족동맹(NLD)이 압승하자 군사정권은 선거무효를 선언해버렸다. 그리곤 지금까지 독재를 계속하고 있다.

평화적 정권교체가 됐다면 총리를 지냈을 수치 여사가 또 1년 6개월의 가택 연금형을 받았다. 20년 전 첫 가택연금 이래 14년을 갇혀 살았다. 버마(군부통치 이전의 국호) 독립영웅 아웅산 장군의 딸인 그는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남편과 두 아들을 둔 행복한 여자였다. 1988년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귀국했다가 격랑에 휩싸인 조국을 보고 내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에 무관심할 수 없다며 민주화투쟁에 뛰어들었다. 한 발짝이라도 국경을 벗어나면 귀국하지 못할까봐 1991년 노벨평화상 수상 때도, 1999년 남편이 영국에서 암으로 죽어갈 때도 나라를 떠나지 않았다.

미얀마는 군부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고,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엄청난 규모의 땅굴(지하터널)을 뚫었다는 점에서 북한과 흡사하다. 북한이 미얀마에 핵 기술을 전파했다는 핵 커넥션 의혹이 일면서 두 나라는 족제비의 축이라는 수치스러운 별칭까지 얻었다. 그래도 북한에는 없는 민주화 지도자가 미얀마엔 있는 걸 보면 김정일의 강권통치가 한수 위인 모양이다. 가냘프지만 우아하고도 설득력 있는 영어로 조국의 아픔을 세계에 알리는 민주화의 꽃, 수치 여사의 즉각 석방을 촉구한다.

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