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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제헌절 아침에 헌법의 가치를 생각한다

[사설] 제헌절 아침에 헌법의 가치를 생각한다

Posted July. 17, 2009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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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청소년의 절반 이상이 제헌절이 어떤 날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 서울대 사회교육과 박성혁 교수가 법무부의 의뢰로 810일 전국 8개 중고교 학생 176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제헌절이 우리 나라의 헌법제정 공포를 기념한 날이라고 정확히 답한 학생은 39.3%에 불과했다.

1948년 7월 17일 공포된 대한민국 헌법은 9차례 개정을 거치며 영욕을 겪기도 했지만, 헌법의 요체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치. 영토조항 등은 대한민국의 중심적 가치로 소중하게 유지됐다. 대한민국이 2차 세계 대전 이후 독립한 140여개 국가 중 민주와 번영을 동시에 성취한 모범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이같은 헌법적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공기가 없을 땐 고마움을 잘 모르듯 헌법의 가치도 잘 깨닫지 못할 수 있다. 헌법을 파괴하려는 나라 안팎의 도전 앞에서 헌법을 수호하려는 국민의 의지가 약화되면 헌정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 때는 제헌절을 공휴일에서 빼버렸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그놈의 헌법이라며 국가의 최고법인 헌법을 능멸하고 스스로 법을 어겨 선관위의 경고를 받고 국회의 탄핵소추를 받으면서 헌정질서가 요동쳤다. 김대중 정부는 615 공동선언문에서 북한의 고려연방제와 남측의 연합제를 뒤섞어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통일이라는 헌법정신을 표류시켰다.

지난해에는 3개월 가까이 폭력시위대가 서울 도심을 휩쓸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1조1항을 조롱하는 사태도 빚어졌다. 여야 의원들이 제헌절 아침까지도 법안처리를 둘러싸고 대화 타협, 그리고 다수결의 원리라는 의회민주주의 정신을 망각한 채 국회 본회의장에서 매트리스와 이불을 깔고 노숙하며 사상 초유의 여야 동거 농성이 벌어지고 있다. 참으로 부끄러운 제헌절 풍경이다.

2007년에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법령 가운데 3건은 헌재가 정한 시한인 지난해 12월31일까지 개정되지 않아 해당 법령이 효력을 상실했다. 국회의 직무유기가 일상화되다시피 한 것이다. 국회 정당 시민단체의 탈을 쓰고 헌법을 유린하는 세력의 반()헌법적 행태는 청소년 세대에게 헌법은 교과서 속에나 존재하는 장식물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크다. 헌법에 규정된 의회민주주의 정신과 절차를 무시하는 국회의원들에게 매달 꼬박꼬박 세비를 국민 혈세로 지급해야 하느냐는 탄식과 자괴감이 밀려오는 제헌절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