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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릉 지옥 길 뚫어라 내일 새벽 정상 도전

서릉 지옥 길 뚫어라 내일 새벽 정상 도전

Posted May. 09, 200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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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의 어깨를 짚고서라도 기필코 정상에 서겠다.

정상 공격을 앞둔 박영석 대장(46골드윈코리아 이사)은 비장했다. 박 대장이 이끄는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대는 지난달 29일 남서벽에 코리안 루트를 내는 데 성공했다. 높이 2000m에 이르는 수직벽인 남서벽에 새 길을 내고 에베레스트 서릉에 한국인 최초로 올라선 것이다.

이제 남서벽 신루트를 따라 정상에 오르는 일만 남았다. 박 대장의 감회는 남달랐다. 1991년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처음 봤을 때 언젠가 기필코 이곳을 따라 정상에 서겠다고 생각했어요. 2005년 산악 그랜드슬램(히말라야 14좌, 7대륙 최고봉, 3극점)을 이뤘지만 남서벽은 저의 영원한 숙제였습니다.

그는 히말라야에 오를 때마다 자존심이 상했단다. 그동안 남이 뚫어놓은 루트를 통해서만 정상에 올랐어요. 14좌 완등과 그랜드슬램이라는 목표가 있어서 빨리 정상에 서는 데만 급급했죠.

그는 에베레스트 남서벽과 악연이 많다. 1991년과 1993년에는 대원으로, 2007년과 지난해에는 등반대장으로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이 과정에서 1993년 남원우, 안진섭 대원을, 2007년 오희준, 이현조 대원을 잃었다. 박 대장 또한 지난달 25일 7600m 지점에서 루트 작업을 하다 왼쪽 종아리가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그는 반깁스를 하고 정상 공격일만 기다렸다. 종아리가 터져도 올라갈 생각입니다. 2007년부터 매년 찾아왔어요. 이젠 남서벽과 애증어린 연인 사이가 된 것 같습니다(웃음). 결말을 지을 때가 됐죠.

원정대는 6일 베이스캠프(5364m)를 출발해 캠프2(6500m)에 도착했다. 7일 하루 쉰 뒤 8일 박 대장을 포함해 대원 4명과 셰르파 1명이 캠프3(7350m)과 캠프4(7800m)로 이동했다. 9일 캠프5(8400m)에 오른 다음 10일 새벽(현지 시간) 기다렸던 정상 공격에 나선다. 공격이 원활할 경우 10일 오전 10시쯤 정상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원정대는 남서벽에 길을 뚫었지만 정상에 서기 위해서는 서릉을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이 서릉이 만만치 않다.

이제까지 서릉을 통해 정상에 선 것은 1979년 유고슬라비아와 1982년 소련 팀뿐이다. 이들은 에베레스트에서 가장 힘들다는 서릉을 뚫는 감격을 맛봤지만 대원 다수가 동상에 걸려 손발을 절단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 지옥 길에 한국 원정대가 수십 년 만에 도전하는 것이다. 서릉은 미지의 루트입니다. 캠프5에서 출발해 정상까지 5시간 만에 도착할 수도 있고, 12시간이 넘게 지연될 수도 있죠. 상황이 어떻든 결코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박 대장은 힘차게 베이스캠프를 출발했다. 남은 사람들의 초초한 기다림은 이제 시작됐다.



황인찬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