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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연말에 예산 펑펑 쓰는 12월의 열병 근절해야

[사설] 연말에 예산 펑펑 쓰는 12월의 열병 근절해야

Posted November. 05, 2008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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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사무처가 작년 자산취득비 예산 32억 원 가운데 46%를 4분기에, 그것도 12월에만 36%를 집중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기청정기 전자레인지 자전거 선풍기 같은 물품들을 사들였고, 12월 31일 하루에만 물품 124건 구입에 1억8000만 원을 썼다. 배정받은 예산을 남기지 않으려고 연말에 몰아서 사용한 게 분명하다. 정부의 예산 낭비를 감시해야 할 국회의 행정조직이 이 모양이니 다른 부처와 기관은 어떨까.

중앙 및 지방정부와 공공기관들은 연말이 되면 불용()예산 쓸 궁리에 이른바 12월의 열병(december fever)을 앓는다. 감사원에 적발되거나 정부 예산낭비신고센터에 접수되는 연말 예산 낭비 사례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는 2004년 12월 14일부터 보름 사이에 132만 원짜리 옷걸이를 비롯해 50건의 가구 및 사무기기 구입에 7억3700만 원을 쓰기도 했다.

그만큼 지적과 비판을 받았음에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공직자들의 의식과 제도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증거다. 국제투명성기구가 조사한 올해 한국 공공부문의 청렴도는 180개국 중 40위였다. 게다가 예산을 남겨봤자 무능하다는 소리나 듣고 다음해 예산 편성 때 그만큼 삭감까지 당한다고 누구도 아끼려 하지 않는다. 연말이면 벌어지는 멀쩡한 보도블록 교체나 불요불급한 장비 구입, 외유성 해외출장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지난 9월 연말 예산 몰아쓰기 근절 대책을 마련했으니 올해는 나아질 것으로 기대해 본다. 쓰고 남은 예산을 다른 곳에 전용할 수 있게 하거나, 새해 예산 편성 때 인센티브 재원()으로 이용하고, 재정관리점검단을 만들어 연말 예산집행 실태를 집중 점검하겠다고 한 것은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그대로 실행해야 한다.

경제위기로 정부가 써야 할 돈은 많은데 들어올 돈은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국가 채무는 300조 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33%가 넘는다. 한 푼이라도 아껴서 정말 필요한 곳에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차제에 예산 편성과 집행의 관행 및 제도를 근본적으로 점검해 12월의 열병을 근절해야 한다. 공직자들의 의식개혁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