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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Posted September. 12, 2008 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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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중세 대학에서는 문법 수사학 논리학 3학()과 산술 기하 천문학 음악 4과()로 이루어진 문리교양과목(liberal art)을 가르쳤다. 이 가운데 3학이 인문학, 4과 중 산술 기하 천문학이 자연과학으로 발전했고 점차 세부전공으로 쪼개지며 심화됐다. 현대의 대학은 교양인보다는 전문직업인 배출의 소임을 더 크게 떠안고 있지만 4년간 교양과목을 가르치는 리버럴 아트 칼리지도 있다. 리버럴 아트 칼리지는 유럽에서 유래됐지만 지금은 미국에 많다. 이 대학 졸업생들은 나중에 직업학교나 대학원에 진학해 직업교육을 받는다.

미국 대학이 한국 대학과 가장 다른 점은 문과 이과를 떠나 전공 선택이 자유롭다는 점이다. 신입생은 2학년까지 마음껏 교양과목을 듣다가 3학년에 전공을 선택하고, 중간에도 쉽게 바꿀 수 있다. 전공 필수과목이 적기 때문에 전공을 여러 개 선택해도 상관없다. 학문 간 경계를 넘나드는 분위기에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창의적 인물도 나온다.

서울대가 자유전공학부를 신설해 2차 수시모집을 하고 있다. 자유전공학부는 법과대학이 법학전문대학원으로, 의과대학이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전환되면서 공백이 생긴 학부 인원을 흡수하려고 만든 과정이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처럼 인문학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자연과학자를 키우는 것이 목표라고 김영정 서울대 입학관리본부장은 밝혔다. 예컨대 지금은 법의학 전공자가 드물지만 자유전공학부에서 법학 및 의학을 함께 배우면 훌륭한 법의학자가 될 수 있다.

서울대가 자유전공학부를 신설한 배경에는 학문 간 융합이 세계적 트렌드라는 점도 작용하고 있지만 내신이 불리한 특목고 학생들을 끌어오려는 뜻도 있다. 실제로 민족사관고 대원외고 국제반에서 미국 유명 대학을 목표로 공부한 학생이 대거 지원했다. 인문계열이든 자연계열이든 자유전공학부가 성공하려면 먼저 예비 로스쿨, 예비 메디컬스쿨이라는 이미지를 떨쳐낼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미국과 유럽의 리버럴 아트 칼리지처럼 수준 높은 교양교육을 제대로 해야 한다. 자유전공학부 지원자 중에서 이름에 걸맞게 자유롭고 창의적인 잠재소양을 지닌 인재를 가려내는 과정부터 중요하다.

정 성 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