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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다 밥 박리다매 소송에 수임료 사기까지

법보다 밥 박리다매 소송에 수임료 사기까지

Posted August. 19, 2008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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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1인당 월평균 수임 3건 밑돌아

국내 법률 시장의 매출 규모는 연간 1조3000억 원 안팎. 미국 대형 로펌 1곳의 매출액 보다 적지만 그나마 전체 변호사의 10%가 속해 있는 상위 6대 로펌이 매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변호사 1인당 사건 수임 건수는 한 달에 3건을 밑돈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집계한 1인당 연평균 사건 수임 건수는 2002년 38.2건에서 지난해에는 31.5건으로 떨어졌다.

2002년 5000명을 넘어선 변호사는 올해 들어 두 배로 늘었지만 사건 중가율은 서울지방변호사회를 기준으로 같은 기간 40% 늘어나는 데에 그쳤기 때문이다.

더욱이 개인 변호사들은 형사 사건을 맡기조차 힘들다. 로펌 소속의 판, 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에게 사건이 집중되는데다 최근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서 국선변호인 청구도 늘고 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국선 변호사의 무료 형사변론을 받은 사람은 2만2494명으로, 2006년(1만7304건)보다 30%가량 늘었다.

변호사의 지갑은 매년 얇아지고 있다. 변호사 업계의 평균 수임료를 경력에 따라 300만1000만 원으로 볼 때 변호사 1인당 한 달 수입은 700만2600만 원가량이다.

개인 변호사는 대개 직원 2명의 급여와 사무실 임대비, 활동비로 최소 한달에 1500만 원 안팎을 쓴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최근 서초동에서 조차 소액 소송 사건을 월 1, 2건도 맡지 못해 신용불량을 이유로 폐업하는 변호사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수임료 관련 변호사 범죄 증가

변호사들의 형편이 안 좋다 보니 수임료와 관련한 범죄가 늘고 있다.

대법원은 올해 4월 아버지를 석방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며 아들에게 판검사 로비 명목으로 수억 원을 뜯어낸 김모(65) 변호사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을 확정했다.

6월에는 미국에서 치매를 앓고 있는 독거 노인 임모(79) 할머니를 속여 위임장을 받아 낸 뒤 재산 7억5000만 원을 가로챈 박모(52) 변호사가 구속됐다.

대한변호사협회가 변호사를 징계한 건수는 2002년 15건에서 지난해 47건으로 늘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된 수임료 관련 피해구제 신청도 2002년 325건에서 2006년 437건으로 증가했다.

의뢰인들에게 소송을 부추겨 사건을 수임하는 변호사도 늘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변호사가 성공보수를 노리고 조정으로 끝날 사건을 무리하게 정식 재판으로 끌고 나가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박리다매형 집단소송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것도 업계 불황의 한 단면이다.

힘없는 개인들을 대리해 거대 집단과 싸우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상업적으로 변질돼 돈만 받고 소송은 뒷전인 점은 문제다.

7만 명의 주민이 관련돼 있는 대구 K2공군 비행장의 항공기 소음 피해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 2004년 8월부터 여러 변호사가 경쟁적으로 사건에 뛰어 드는 과정에서 일부 주민이 소송 위임장을 2중, 3중으로 내 소송이 지연되고 있다.

업계 불황, 법관 관료화에 영향

국회에서는 변호사 겸직 의원의 사건 수임이나 과다수임료를 제한하자는 법안이 제출되고 있지만, 이른바 밥그릇을 줄이자는 이들 법안은 번번이 무산되고 있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초 의원총회에서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의 사건 수임을 금지하는 자정 선언을 안건으로 내놓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법조인 출신 의원들의 반발이 거센데다 국회 개원 등 시급한 현안이 많다는 것이 이유였다.

대한변협에 따르면 18대 국회에서 법조인 출신 의원 58명 중 사건 수임을 안 하겠다며 변호사 등록을 하지 않은 의원은 1명에 불과하다. 휴업을 신고한 의원은 11명이다.

김동철 통합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변호사 수임료에 상한선을 두고 형사 사건의 성공보수를 금지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상민 자유선진당 의원은 최근 변호사에게 변리사 및 세무사 자격을 자동으로 부여하는 제도를 폐지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이들 개정안이 통과되긴 쉽지 않아 보인다. 이 의원은 같은 법안을 17대 국회에서도 발의했지만 변호사 단체의 로비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판검사가 퇴직 직후 로펌에 바로 취업하는 것을 제한하자는 법안도 논의되고 있지만 반발이 만만치 않다.

서울의 한 부장판사는 요즘은 전관예우의 유효 기간이 퇴직 후 1년 안팎으로 줄어 이 기간 동안 사실상 평생 먹고 살 것을 벌어야 한다며 최근엔 로펌이 몸값 높은 부장판사보다 일 잘하는 1015년차 단독 판사들을 선호해 그마저도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재경지법의 한 젊은 판사는 예전 같으면 판사가 외압에 맞서 소신 있게 사표를 쓰기도 했지만 요즘은 어떻게든 법원에서 살아남으려고 눈치를 보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며 변호사 업계의 불황이 법관의 관료화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종식 be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