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도 많은 남자들이 긴 생머리에 청순가련형의 여자라는 고루한 취향을 고수하듯, 애완남(어린 남성을 애완동물 키우듯 사귀는 관계)도 키운다는 이 시대의 여자들에게도 고전적인 로망은 남아 있다. 목숨 걸고 나만을 지켜 주는 남자, 모두에게 강하지만 나에게만 약한 남자. 20일 개봉하는 영화 사랑은 한 남자의 사랑을 통해 여자들이 저런 남자라면 하는 환상에 빠지게 한다. 왜 환상이냐고? 이런 남자, 이런 사랑은 현실엔 없으니까.
채인호(주진모)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마음에 품었던 미주(박시연)와 고등학교 때 재회한 뒤 그녀를 지켜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그 약속을 지키려다 전과자가 되고 미주는 연락이 끊긴다. 간신히 마음을 잡고 살아가던 그는 유 회장(주현)의 눈에 띄어 해결사 노릇을 하며 승승장구하는데, 미주가 유 회장의 여자가 되어 눈앞에 나타난다.
영락없는 신파, 제대로 신파다. 가난하고 주먹 센 남자, 밀수꾼 아버지와 노름꾼 어머니에 본드 마시는 오빠를 가진 여자, 불우한 두 남녀가 앉아 부르는 노래는 행복한 가정을 그리는 듯 엄마 아빠도 함께 투게더 투게더 하는 추억의 CM송이다. 다시 나타난 여자는 하필이면 은인의 여자가 되어 있다. 남자는 그녀와 유 회장에게 편히 쉬십쇼 하며 나와서는 혼자서 지 같네, 사람 인연 하며 운다. 오, 청승! 그러나 신파가 약하면 유치하지만 관객을 끝까지 몰아붙이면 그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눈물이 나는 법이다.
곽경택 감독은 친구가 경상도식 우정을 얘기했다면 이건 경상도식 사랑이란다. 수위가 센 폭력 장면에 넘치는 마초적 에너지와 부산 사투리, 부산의 빛바랜 골목길은 자꾸 친구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친구에서도 내내 거슬렸던 여성에 대한 폭력과 입에 담기 힘든 언어는 등장인물들이 사는 세계의 리얼리티를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에서도 여성 관객을 불편하게 한다.
이건 주진모의 영화다. 혼자 영화를 이끌면서 미남 스타의 이미지에 갇혀 있던 능력을 120% 발휘한다. 눈을 희번덕거리며 세상에서 가장 비열한 억양으로 사랑해를 말하는, 패주고 싶을 정도로 미운 건달 역할의 김민준의 모습도 지금까지 그가 보여 준 것 중에 가장 인상적이다. 15세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