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간 무역협정이란 매우 속도가 느리며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죠. 따라서 무역이 생존과 직결되는 국가일수록 적극적으로 국가 간 무역의 틀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알베르토 반 클라베렌(사진) 칠레 외교차관이 제4차 한-칠레 고위정책협의회에 참석하기 위해 3, 4일 이틀 동안 방한했다. 유럽연합(EU) 대사와 유럽지역 3개국 대사를 지내 칠레에서 유럽통으로 꼽히는 그는 거대 경제권인 EU와 한국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한미 FTA 체결에 이어 국제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며 2004년 체결된 한-칠레 FTA의 성과를 높이 평가했다. 그를 3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인터뷰했다.
한-칠레 FTA가 발효(2004년 4월 1일)된 이후의 3년을 어떻게 평가하나.
양국 교역이 232% 증가한 것도 괄목할 만하지만 칠레는 이를 통해 개별 산업 분야의 경쟁력도 높일 수 있었다. FTA를 계기로 확대된 양국 간 경제 통상 협력관계는 정치 안보분야로 확대될 것이다.
EU와의 FTA 협상에 참여한 경험에 비춰볼 때 한국 협상팀에 해줄 조언은.
27개 회원국의 복잡한 구조 속에서 각국 이해관계에 따라 제각각의 소리를 내는 EU와의 협상은 복잡한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EU는 한번 결정한 것은 끝까지 밀어붙인다. 단 복잡한 EU 국가들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대응하면 된다. 기존 EU 시장에 진출한 기업을 잘 활용해야 한다. 와인의 주요 산지인 유럽에 칠레 와인이 큰 시장을 형성한 것도 기존 진출 기업을 활용한 전략 덕분이었다.
칠레는 한국과 FTA를 체결하기 전에도 이미 17건의 FTA를 50여 개국과 체결했다. 이 같은 적극성은 어디에서 나왔나.
다자 틀에 안주하면 훨씬 편하겠지만 진행 속도가 너무 느리다. 경쟁국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경제를 앞장서서 개방하고 다른 주요 시장에 빨리 접근해야만 했다. 이를 위해 우선 모든 수입상품에 6%의 단일 관세를 적용했다. 이어 주요 무역 상대국과 양자 협상 체결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경쟁국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칠레는 1973년 쿠데타로 집권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정권하에서 시카고학파를 대거 기용해 개방정책을 폈다. 이로 인해 제조업의 경쟁력을 살리고 꾸준한 경제성장을 이뤘다)
국가 간 FTA는 관세 수준 등을 제각각으로 만들어 오히려 무역을 복잡하게 하고 기업을 어렵게 한다는 스파게티 볼 효과 논란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FTA를 비판하는 것은 광범위한 다자간 무역협정으로 충분하다는 이상적인 영역에서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학술적인 이론일 뿐이다. 현실 세계에선 일이 그렇게 쉽게 진행되지 않는다. 협상가는 수많은 나라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무마시켜야 하므로 어려움에 처하기 쉬우며 특히 가난한 나라들이 이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도하 라운드 협상이 지지부진한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