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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선전 한진해운 베를린호 탑승기

Posted September. 30, 2006 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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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현장의 최전선에서

계단 올라오느라 힘 드셨죠. 화물이 꽉 차면 배가 내려가 높이가 낮아지는데 오늘은 짐이 덜 찬 데다 빈 컨테이너도 있어 배가 높이 떠 있습니다. 항해 경력 21년인 김 선장이 인사를 건넸다.

홍콩을 출발해 선전, 일본 요코하마(), 미국 시애틀, 캐나다 밴쿠버를 거쳐 다시 홍콩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이날 오후 11시로 예정됐던 출항 시간이 다음 날 오전 1시로, 다시 오전 2시로 연기됐다는 보고가 이어졌다. 화물 선적이 늦어졌기 때문이란다.

보통 3교대로 일하지만 입출항 때는 전원 근무한다. 입출항 시간이 계속 늦춰져도 준비 상태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하루나 이틀을 꼬박 일하는 경우도 잦다.

항해사들은 고된 업무지만 경제 발전의 최전선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에 힘든 줄 모른다.

나라 간 물류는 99% 이상이 배를 통해 오갑니다. 경제가 좋아지는지 나빠지는지 우린 금방 알죠.(김 선장)

요즘 각국은 항만을 늘리고 화물처리 속도를 높이는 등 물류 유치 전쟁이 치열하다.

김 선장은 중국이 양산() 항을 개항하고 저가() 선사까지 앞세워 공격해 오는 데 대해 우리는 정확한 시간에 안전하게 화물을 운송하면서 품질로 맞서고 있다고 했다

1980년대만 해도 한국에서 수출하는 물품은 쌀 비료 철광석 등 원자재가 많았습니다. 요즘은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TV, 반도체, 휴대전화 등 첨단 전자제품이 늘고 있어요. 항해 경력 23년인 김 기관장이 귀띔했다.

바다는 내 운명

김 선장과 김 기관장은 한국해양대를 졸업한 후 곧바로 배를 탔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항해사 월급이 47만48만 원으로 육상 기업 중 가장 월급이 많은 곳보다 20만 원 더 많았어요. 5남매 중 장남이라 동생들 공부시키기엔 더 없이 좋았죠. 외국을 다닌다는 것도 매력이었고요.(김 선장)

목포해양대를 졸업한 뒤 올 1월 입사한 류 씨는 이번이 두 번째 항해.

고등학교 다닐 때 해양대 광고를 보고 운명의 힘 같은 걸 느꼈어요. 바다에서 일하는 순간만을 꿈꿔 왔죠. 배를 타고 보니 탁월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바다를 일터로 삼는 것이 결코 녹록지만은 않았다.

태풍에 휩쓸려 배가 45도 가까이 기울어지는데 방향을 잡는 조타기가 모두 고장 났습니다. 30분 이상 버티기 어렵겠다는 생각에 가족 얼굴이 떠오르더군요. 이제 마지막이구나 했는데 운 좋게 고쳤습니다.(김 기관장)

통신 장비가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침몰 사고로 동료를 잃는 경우도 있었다. 1987년 2월에는 한진해운 소속 인천호가 태풍에 침몰해 승선자가 모두 사망했다.

홍콩선전 남중국해 베를린호에서



손효림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