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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선왕조실록

Posted June. 01, 2006 03:00,   

조선시대에 역사기록의 임무를 맡은 관리는 사관()이었다. 이들은 조정()회의에 들어가 임금과 신하 사이에 오가는 말들을 낱낱이 기록했다. 시중에서 벌어지는 일도 보고들은 대로 다 적었다. 사관이 남긴 각종 기록은 사초()로 불린다. 기록문화의 정수로 꼽히는 조선왕조실록은 이 사초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사관들의 올곧은 정신을 보여 주는 태종 때의 일화가 있다. 임금이 사관을 따돌리려고 침전에서 회의를 열었더니 사관은 종이와 붓을 들고 따라와 침전 밖에서 귀를 기울이며 기록을 했다. 진노한 태종이 사관을 바꿔 버렸으나 새 사관은 아예 침전 안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임금이 싫어했던 또 다른 관리가 언관()이다. 임금에 대한 직언을 전담하는 관리였다. 조선 역사가 519년이나 지속된 것은 사관과 언관 덕분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일본에 빼앗겼던 조선왕조실록 47책이 한국에 반환된다. 정족산 태백산 적상산 오대산 등 4대 사고()에 각각 보관돼 있던 실록 가운데 도쿄대로 반출됐던 오대산본()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될 만큼 한국 문화재를 대표하는 왕조실록의 귀환은 뜻이 깊다. 문화재 약탈은 인류의 탐욕과 파괴성을 보여 주는 야만행위이지만 전 세계가 문명시대에 접어들었음에도 반환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프랑스가 강화도에서 가져간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협상이 아직껏 지지부진한 것도 그렇다. 서울대에 실록을 돌려주기로 한 도쿄대의 양식은 높이 살 만하다.

문화재청은 외국이 갖고 있는 우리 문화재가 7만여 점에 이르며 그중 46%가 일본에 있다고 집계했다. 일제의 침략 과정에서 강탈당한 문화재의 귀환을 앞당기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문화재란 한번 빼앗기면 그처럼 찾아오기 힘들다는 사실에서 우리 내부의 역사의식을 가다듬을 필요를 느낀다. 역사라는 말이 넘쳐나는데도 조선왕조실록을 만들었던 옛 사관들이 가졌던 깨어 있는 정신은 찾아보기 어렵다. 다시는 문화재를 빼앗기지 않도록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일을 생각해야 한다.

홍 찬 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