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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배지 뗀 생활 극과 극

Posted May. 02, 20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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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가 깔리던 봄날 저녁, 1.5평 남짓한 컨테이너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직 가시지 않은 겨울의 한기가 느껴졌다.

서울 성북구 삼선동 삼선초등학교 뒤편 골목에 놓여 있는 컨테이너. 보온 시설은 전기장판 하나가 전부였다. 화장실도 없다. 컨테이너에 사는 노인 부부는 이웃 독거노인 집의 화장실을 이용한다. 부엌은 컨테이너와 입구 계단 사이. 물은 이웃집에서 길어다 쓴다.

컨테이너에 사는 노인은 6, 7, 9, 10대 국회의원과 신민당 부총재, 평민당 부총재, 통합민주당 최고위원까지 지낸 박영록() 전 의원이다.

그는 현역 의원 시절 야당계에서 군사정권에 가장 비타협적인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혔다. 퇴임 이후에는 민족사회단체총연합회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무실 임차료조차 못 낼 형편이었고, 지원을 약속했던 사회단체도 하나 둘씩 발을 빼기 시작했다. 결국 밀린 임차료를 갚지 못한 박 전 의원은 2003년 3월 40년간 살았던 삼선동의 35평짜리 자택을 공매처분당했다. 결국 남은 200만 원으로 컨테이너를 장만한 것.

야당에서도 정권과 적절히 타협하고 자기 주머니를 챙기는 사람이 많았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이 못마땅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돌아보니 그런 사람들이 집권도 하고 세상은 저만치 변해 있는데 나는 그 자리더군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4년 9월, 사업에 실패한 차남이 부모님을 제대로 모시지도 못하고 고생만 시켜 드려 죄송하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80년대 초 당시 박 의원과 함께 신군부에 끌려갔던 장남은 강원 원주시에서 사업을 하다가 빚만 졌다.

박 전 의원의 빈한()은 다소 심한 경우에 속하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궁하게 살아가는 전직 의원이 적지 않다. 왜 그럴까. 바람직한 전직 의원들의 모습과 문화는 어떤 걸까.

이런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본보와 동의대 선거정치연구소(소장 전용주• 교수)는 3, 4월 2개월에 걸쳐 전직 의원들의 경제•사회적 생활 실태를 조사했다. 800900명으로 추산되는 생존 전직 의원 가운데 해외 체류나 주소 불명, 응답 거부 등을 제외한 317명을 대상으로 했으며, 조사는 전화로 하거나 직접 만나 했다.

국내 학계와 언론을 통틀어 전직 의원들의 생활 전반을 실사()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조사 결과 전직 의원들의 생활상은 중간이 옅고 상하의 치우침이 극심한 모습을 보였다.

조사 대상의 64.4%(204명)는 월수입이 300만 원 이하였다. 이들의 평균 월수입은 101만 원. 만 60세가 넘으면 월 100만 원씩 받을 수 있는 연금까지 포함한 것이다. 연금 수급 대상이 안 돼 월수입 100만 원 이하인 전직 의원도 32.2%(102명)나 됐다.

반면 월수입 300만 원 이상은 34.7%(110명)로 이들의 한 달 평균 월수입은 497만 원으로 집계됐다. 조사 대상자 전체의 평균 월수입은 225만 원이었다. 0.9%(3명)는 월수입액의 공개를 거부했다.

재산은 5억 원 미만인 사람이 53.0%(168명)이며 이들의 평균 재산은 1억9000만 원으로 집계됐다. 5억 원 이상의 재산 보유자는 40.2%(138명)이며 이들의 평균 재산은 11억8000만 원으로 파악됐다. 조사 대상 전체의 평균 재산은 6억1000만 원이었다.

전직 의원 10명 중 6명(60.3%)은 과거 국회의원 경력이 개인의 사회•경제적 활동에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이들 가운데 약 80%는 도움이 되는 기간이 10년이 넘었다고 말했다.

전직 의원들의 경우도 전관예우가 있으나 현역 때 여당 또는 야당이었는지, 어느 상임위에 있었는지에 따라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여당 출신이 야당 출신보다, 상임위 중에서는 건설교통위 출신이 상대적으로 전관예우를 많이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 대상 전직 의원들의 66.6%는 현재의 국회 역할이 자신의 재임 때보다 못하다고 평가했다.

연세대 모종린() 교수는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은 뒤 국가에 마지막으로 봉사하기 위해 국회의원이 된 사람에 비해 젊어서부터 정치에 올인(다걸기)한 사람들의 경우 전문성 부족으로 퇴임 후 생활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고 의정활동의 경험도 효과적으로 살리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박성원 sw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