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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나라당의 정책정체성 무엇인가

Posted December. 03, 2005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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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막바지 예산심의와 민생법안 처리과정에서 한나라당이 드러내고 있는 정책색깔의 혼란상을 보면 127석을 가진 제1야당의 정체성과 지키고자 하는 가치가 대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보수도 진보도 아닌, 기회주의적 잡탕정당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당초 내년 예산안에서 8조9000억 원을 삭감하겠다고 별렀다. 그러나 7조8000억 원, 4조 원으로 슬그머니 낮추더니 오락가락한다는 비판이 일자 다시 9조 원으로 목표를 끌어 올렸다. 그러면서도 수조 원씩 드는 국책사업추진 법안을 무더기로 쏟아내고, 민원성 예산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사과정에 끼워 넣는 이율배반적 행태를 서슴지 않고 있다.

종합부동산세 과세대상도 9억 원과 6억 원 사이에서 당론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쌀 협상 비준안도 농민 표를 의식해 10월 상임위를 통과한 이후 두 달 가까이 미루다가 겨우 본회의 표결에 응했다. 모두 구체적 정책목표와 국정철학이 결여된 채 정치적 이미지 제고만을 노려 여론의 풍향에 흔들려온 결과다.

우리는 오늘의 총체적 국정파탄과 사회전체를 휩쓰는 좌()편향 포퓰리즘의 위기상황을 초래한 데에는 대체()정당, 수권()정당으로서의 역할모델을 보여 주지 못한 한나라당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 두 차례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하고도 제대로 된 개혁적 보수의 가치를 만들고 지키기는커녕 체질은 구태()를 못 벗은 채 보수의 딱지를 떼려는 데만 급급한 것이 한나라당의 모습이었다.

한나라당은 여권의 실정()에 대한 반사이익으로 만들어진 40%대의 지지율에 고무된 듯하다. 그러나 정책상품, 나아가 국정운영의 청사진을 내놓고 여당에 대한 상대적 우월성을 국민들로부터 평가받지 못하는 한 이는 순간의 거품일 뿐이다.

무엇보다 여권의 아마추어적 국정운영에 절망()하고도 야당에조차 대안의 희망을 발견할 수 없다면 국민은 절망할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한나라당은 체질개선을 위해 스스로 채찍질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