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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너희가 지켜! 우린 놀테니까 엽기 초능력

지구는 너희가 지켜! 우린 놀테니까 엽기 초능력

Posted August. 11, 2005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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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판타스틱 4는 딱 슈퍼영웅들의 시트콤이다.

배트맨 비긴즈나 스파이더맨처럼 자기 정체성이나 개인과 사회의 관계 등 무거운 주제를 깔면서 있는 체하지 않는다. 초능력 탓에 생긴 갑작스런 변화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소시민들이 가벼운 터치로 유머러스하게 그려진다. 순풍 산부인과의 오지명 박영규 선우용녀 미달이에게 엄청난 능력이 부여됐을 때 벌어질 일들을 연상하면 비슷할까.

천재 천체물리학자 리드(이안 그루퍼드)와 그의 옛 연인 수(제시카 알바), 수의 동생인 천방지축 우주비행사 쟈니(크리스 에반스)와 리드의 오랜 동료 벤(마이클 치클리스)은 사업가 빅터(줄리안 맥마흔) 소유의 우주정거장에서 태양풍 실험을 하다 온몸에 방사능을 쏘인다. 귀환한 뒤 이들은 몸이 고무처럼 늘어나고(리드), 투명인간이 되며(수), 몸이 돌덩이처럼 변해 엄청난 힘을 갖게 되고(벤), 불덩이가 돼 날아다니게(쟈니) 된다. 실험 실패로 투자자들이 등을 돌린 빅터마저 몸이 티타늄보다 강해지고 다이아몬드보다 단단해진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렇다. 그동안 슈퍼영웅들에게 우리가 너무 큰 짐을 지운 것은 아닐까. 초능력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사회악과 맞서 싸우거나, 지구를 지켜야 할 의무는 없지 않나. 그 능력으로 여자를 유혹하면 좀 어때. 철없지만 삶을 즐길 줄 아는 쟈니의 말처럼 초능력은 쿨(cool대단히 신나는)한 것일 뿐이다.

판타스틱 4는 이야기보다는 시트콤처럼 상황이 주는 에피소드에 주력한다. 그것은 대부분 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는 과정과 거기서 파생되는 우스꽝스러운 결과들이다. 쟈니는 눈 덮인 산에서 스노보드를 타다 몸이 불덩이가 되면서 주변의 눈을 녹여 노천탕을 만들어 버린다. 감정이 격해지면 몸이 사라지는 수는 리드와 키스하려고 할 때 투명해진다. 벤은 아내에게 전화를 걸려고 하지만 두꺼워진 손가락은 번호판 서너 개를 한꺼번에 누른다.

초능력을 대하는 방법도 시트콤처럼 가볍다. 닫힌 문과 문지방 사이의 1mm 틈으로 손을 밀가루 반죽 늘리듯 집어넣어 문을 여는 리드에게 쟈니는 완전 엽기네라고 면박을 준다. 리드는 돌덩이로 변한 벤의 조건반사 실험을 위해 의료용이 아니라 공사장에서 쓰는 망치로 무릎을 후려친다. 초능력은 마치 가수의 노래솜씨나 배우의 연기력처럼 이들의 능력이자 개성일 뿐 어느 누구도 영웅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이들은 단지 좀 이름이 난 스타 정도에 만족할 뿐이다.

악당도 다르지 않다. 스파이더맨의 고블린이나, 배트맨 비긴즈의 라스알굴처럼 사회나 개인에 대한 분노와 원한이 하늘을 찌르지 않는다. 시트콤의 어리숙한 악역처럼 빅터는 이 세상에 자기 이외의 초능력자가 있기를 바라지 않을 뿐이다. 소심하면서도 약간 유아적인 속내다. 그러다 보니 이들의 마지막 대결은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그동안 변주됐던 거창한 의미는 휘발되고 4 대 1의 약간 불공정한 레슬링 경기 같이 보인다.

슈퍼영웅이 가면을 벗어던지고 어두운 저택에서 나와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 것에 개의치 않는 판타스틱 4는 가벼우면서도 경쾌한 지금의 대중문화가 과거의 진지하고 무거웠던 영웅들을 해석해 내는 한 가지 관점이기도 하다.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촉망받는 여배우 중 한사람으로 꼽히는 제시카 알바는 완벽한 S-라인 몸매를 뽐내며 원더우먼 이래 가장 섹시한 여성 슈퍼영웅으로 자리매김했다. 11일 개봉. 12세 이상.



민동용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