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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개발 중독증

Posted March. 27, 2005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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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이 지상과제이던 시절이 있었다. 경제개발 국토개발이 우리의 사명이었고 개발 사장이라는 명함을 돌리는 복덕방 주인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개발시대, 개발연대(), 개발독재가 사라지면서 이 단어의 후광도 시들었다. 국토개발연구원, 토지개발공사 등은 기관명에서 개발을 잽싸게 뺐다. 바야흐로 양()의 시대, 건설의 시대가 가고 질()의 시대, 문화와 환경의 시대가 온 것 같았다.

그러나 개발 중독증은 여전하다. 천도()해야 서울 비대증을 고칠 수 있다더니 이제는 청와대 주변 단독주거지에 고층 건축을, 세종로에는 초고층 시 청사를 짓겠다고 한다. 용산공원 지하를 개발하겠다는 포부도 들린다. 혁신도시를 만든다지만 그 역시 내용 채우기에 앞서 땅 깎고 건물 세울 생각부터 하는 것이다. 국도를 넓힌다고 산허리를 자르고, 신도시를 만든다고 그린벨트를 서슴없이 푼다.

토건업자들이 개발을 부추기고 싶은 건 당연하다. 하지만 정책당국이 도시와 국토를 한갓 토건사업의 무대로 바라보는 것은 안타깝다. 하드웨어를 바꾼다고 소프트웨어가 저절로 업그레이드될 리 없다. 정형, 외과수술만으로 사람의 건강과 행복을 만들어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도 개발 중독에 마취된 당국은 사안에 관계없이 전가의 보도처럼 개발 처방을 적어내고 개발자를 떼어버린 기관들은 개발 뒤치다꺼리에 숨차다.

우리가 흔히 개발로 뜻풀이하는 영어의 development에는 성장, 계발, 성숙, 전진, 개량, 진화의 뜻이 함께 들어 있다. 외부로부터 강요된 물리적 개발이 아니라 스스로, 천천히, 조금씩 내면을 채우고 키워 이룩하는 총체적 성장을 뜻한다. 그래야 사람과 공간이 함께 자라난다. 개발 중독자들이 간과하는 게 바로 이런 내발적() 성장이다. 이 소중한 과정에는 눈 감은 채 토건업자의 눈으로 도시와 국토를 바라보는 정부라면 더는 선진사회를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

강 홍 빈 객원 논설위원서울시립대 교수

도시계획학 hbkang@uo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