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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상상력

Posted January. 26, 2003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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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적 상상력(라이트 밀스), 변증법적 상상력(마틴 제이), 역사적 상상력(헤이든 화이트), 상징적 상상력(질베르 뒤랑), 연극적 상상력(로버트 존스), 해석학적 상상력(조지프 블레이처), 신좌파적 상상력(조지 카치아피카스). 이처럼 상상력을 제목으로 걸친 책이 적지 않다. 그만큼 상상력은 학문과 지식의 동력원이자 저수지였다. 그러나 오늘날 디지털시대에 상상력은 그 이상이다. 생존의 필수요건이다.

36년 전인 1967년 1월 27일, 그리섬, 화이트, 채피 등 미국의 세 우주비행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훈련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날 이들은 우주선 내의 밀폐된 조종실 좌석에 자신들을 벨트로 고정시킨 후 발사훈련을 받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훈련 중인 우주선 안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좌석에 묶여 있던 세 명의 우주비행사들은 꼼짝못하고 순식간에 화마에 휩싸여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 예상치 못한 비극은 당시 미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언론에서도 소련과의 경쟁만 지나치게 의식한 정부와 항공우주국(NASA)이 야기한 인재()라는 비판의 소리가 높았다.

결국 미 의회는 아폴로1호 우주선 화재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청문회를 열지 않을 수 없었다. 청문회의 막바지에 화재로 숨진 우주비행사들의 동료 1명이 소환되었다. 그는 의원들의 심문에 답하며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의원들의 지적처럼 NASA가 소련과의 경쟁심리에 휩싸여 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우주선 참사의 보다 근원적인 원인은 다름 아닌 우리들의 제한되고 빈곤한 상상력 그 자체였다. 솔직히 우리는 우주공간에서의 화재는 예상하고 대비했지만 정작 훈련 중인 상황에서 화재가 일어나리라곤 상상치 못했다. 결국 그 상상력의 한계와 빈곤이 3명의 우주비행사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말이었다.

우리는 상상할 수 있는 만큼 대처할 수 있고, 또 생존할 수 있다. 상상력이 곧 위기 대응력이며 현실 돌파력이다. 지난 시대에는 지구력으로 승부해 왔다. 오래 버티는 사람과 조직에 승산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상상력으로 승부하는 시대다.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상상력을 그 사회의 정신적 생산력 그 자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상상력, 특히 정치적 상상력은 과연 무엇을 생산하고 있을까. 정치적 상상력이 한껏 부풀려진 가운데 출범한 대통령직인수위가 구성 완료된 지 오늘로 한 달째 되는 날이기에 해 보는 말이다.

정 진 홍 객원논설위원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atombit@net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