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억원 대북 비밀지원 의혹을 국회 차원에서 조사하자는 한나라당 요구에 민주당이 다수 의석의 횡포라며 반발하는 것은 전혀 설득력 없는 억지일 뿐이다. 이번 의혹은 현대상선 자금흐름에 대한 계좌추적으로 이미 밝혀졌어야 했다. 정부는 금융실명제법 위반이라는 군색한 이유를 앞세워 계좌추적을 회피하고 있지만 금융감독원 노조는 7일 계좌추적이 법률상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정부에 의혹 규명의 의지가 없는 한 국정조사를 통해 진상을 밝히는 것은 국회의 당연한 의무다.
지난주 국정감사에서 엄낙용 전 산업은행총재는 문제의 4000억원 대출에 청와대가 개입한 정황을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현 정부의 대북 뒷거래설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박지원 대통령비서실장은 단돈 1달러도 북한에 준 적이 없다고 반박하고 전화로 당시 이근영 산은총재에게 대출지시를 했다는 한광옥 전 대통령비서실장 역시 의혹 자체를 완강히 부인했다.
하지만 말로만 아니라고 해서는 국민적 의혹을 해소할 수 없다. 언제까지 소모적 정치공방으로 끌어가서도 안 된다. 따라서 국회 국정조사는 그 해결 방법의 하나로 마땅히 이루어져야 한다. 문제는 민주당이 이번 사안을 한나라당과 엄 전 산은총재의 모의라고 반발하고 정부 또한 비협조적일 것이 뻔한 상황에서 국회 국정조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진상을 밝히기보다는 정쟁()의 확대재생산에 그칠 우려가 높다.
우리는 여기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더 늦기 전에 진실을 말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하고자 한다. 이는 정권의 마무리를 위한 국민신뢰 회복에 절실히 필요하며 남북관계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도 불가피한 일이다. 이제라도 진실을 털어놓고 국민의 이해를 구할 때만이 진정한 남북관계의 진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나라와 국민은 물론 김 대통령 자신도 불행해 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