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대북()전략국 소속 안모 과장이 미국 정보조직의 한국계 요원인 윤모씨에게 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파면된 것은 그냥 넘길 만한 사건이 아니다. 외국에서 활동하던 우리 정보요원들이 주재국 정부에 의해 추방당한 일은 있어도 이번처럼 국정원 자체 감찰로 한 간부의 기밀누설 혐의가 적발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문제의 안씨는 윤모씨와 직무상의 범위에 속하는 일상적인 접촉만 했다고 주장하는 모양이다. 국정원측도 안씨가 미국측에 넘긴 정보는 별 것이 없다며 다만 안씨가 사전 사후 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부 기강확립차원에서 그를 해임했다고 설명한다. 말하자면 안씨를 파면한 이유는 정보유출이 아니라 공직자로서의 자세 때문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우리는 안씨가 미국측에 넘긴 정보가 별 것이 없다고 한 국정원측 설명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다. 우선 안씨는 남북관계의 기밀을 취급하는 국정원의 대북전략국 소속 과장이었다. 그는 김대중() 정부 출범 초부터 북측과 직접 접촉도 하는 등 대북정책의 기본틀을 짠 핵심 실무책임자였다. 그런 인사가 미국측 요원과 자주 어울리고 다녔다면 그동안 넘긴 정보가 정말 별 것이 아니었는지 의문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뿐만 아니라 안씨 개인에 대한 조사가 시작된 것도 3월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워싱턴발로 남북평화선언 문제와 관련된 보도를 한 직후라고 한다. 남북한이 비밀리에 추진하던 일이 외국 신문에 보도되자 그 과정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안씨의 일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면 이번 사건은 단지 한 간부의 공직기강 문제로만 처리해 간단히 종결지을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본다. 국정원측이 안씨가 불법으로 빼낸 정보는 없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당장은 신뢰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안씨가 갖고 있는 대북정책관련 정보는 그 양이나 질로 볼 때 상당한 수준의 것임에 틀림없다. 혹시라도 더 이상 유출된 것은 없는지 다시 철저한 점검을 해야 할 것이다.
국정원의 조직에 조금이라도 허점이 있으면 그것은 국익과 직결된다.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국제 정보전쟁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국정원 요원들의 근무기강과 자세는 더욱 확고히 정립되어야 한다. 안씨 외에도 이번 사건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있다면 일벌백계식 책임 추궁을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국정원의 조직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