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경제운용 방침의 초점은 지식정보강국 건설이다. 이 점은 지난 3년간 시행된 주요 정책에도 잘 나타난다. 벤처캐피털 육성과 벤처기업에 대한 각종 지원정책, 3만개 중소기업 정보기술(IT)화 지원사업, 멀티미디어 콘텐츠 육성정책, 전국 초중고교에 무료인터넷 회선보급 등 부처마다 IT와 디지털 관련 정책을 경쟁적으로 추진했다.
덕분에 국내 IT산업은 외환위기 속에서도 매년 20%의 성장을 거듭해왔다. 한국은 이제 전세계적으로도 인터넷 인프라가 가장 잘 갖춰진 나라, 인터넷 비즈니스가 가장 활발한 나라로 꼽힌다. 이 점에서 현 정부는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을 산업경제에서 지식정보경제로 바꾸어놓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외형상 화려한 성과의 이면에는 고질적인 문제가 숨어 있다. IT산업 육성을 둘러싼 부처간의 업무 중복과 힘겨루기로 정책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점이 대표적인 예. 특히 정보통신부와 산업자원부, 문화관광부, 과학기술부 사이의 영역다툼은 심각한 수준이다. 업체 입장에서는 정부가 서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하니 좋은 일일 수 있지만 그로 인한 행정과잉과 정책혼선이 우려된다.
IT산업을 둘러싼 부처간 갈등을 부처 이기주의의 산물로만 볼 수는 없다. 이는 산업의 IT화와 디지털화가 본격화되면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과도기적 현상이다. 디지털 정보기술과 인터넷은 공간의 소멸과 미디어의 융합을 초래하는 반면 기존의 법률과 규제, 부처간 업무관할은 공간과 각 미디어간 분리에 입각해 형성돼 있다. 경제의 디지털화가 진전될수록 전통적인 부처간 관할영역의 중복과 불명확성이 필연적으로 초래되는 것이다.
한 예로 현재 IT업계의 핵심 화두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결합이자 전통산업의 e비즈니스화다. 그렇다면 전통산업의 e비즈니스화 업무가 전통산업을 총괄하는 산자부 소관인가, IT산업을 관장하는 정통부 소관인가.
또 콘텐츠산업은 지금까지 출판 음반 영화 방송 등 아날로그 형태로 생산되고 아날로그 유통망으로 소비됐다. IT산업의 발전과 함께 콘텐츠는 디지털 형태로 생산돼 인터넷망에서 소비되는 추세로 바뀌어 간다. 인터넷방송은 통신인가, 방송인가. 정통부 업무인가, 문화부 업무인가.
진정한 IT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부처간 업무영역의 경계를 뛰어넘는 발상이 필요하다. 아날로그적으로 구분된 행정 관할을 가지고서 어떻게 디지털 통합의 시대에 경제발전을 주도하겠는가.
이미 미국은 10년 전에 IT 분야의 연구개발(R&D)을 총괄하는 범()부처적인 법(HPC법)을 만들어 일본을 제치고 세계최고의 IT강국으로 발전했다. 일본도 IT기본법을 제정해 총리를 중심으로 강력한 IT산업 육성책을 추진중이다. 반면 한국은 법체계조차 정비되지 못했다. 비슷한 정책을 통합하거나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기능은 마비상태에 가깝다.
IT산업은 경제성장의 기관차다. 정부는 IT 기관차가 달릴 수 있는 레일부터 먼저 정비해야 한다. 지금처럼 부처마다 서로 레일을 깔겠다고 나서면 기관차는 탈선할 수밖에 없다. 필자가 IT기본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용식((주)하나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