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이순원이 10년만에 독자와의 약속을 지킨 작품. 92년 그곳엔 비상구가 없다를 내면서 예고한 속편이 전편과 함께 묶여 나왔다.
속편은 소설 압구정동이 나오고 몇 해 뒤 작가가 의문의 독자 T로부터 전화를 받는 것에서 시작된다. T는 소설에 등장하는 타락한 압구정 인간들을 응징하겠노라고 경고하고, 나이트클럽의 무희인 여대생 등이 줄지어 살해되면서 현실화된다.
전편의 동어반복을 피하려는 듯, 속편은 살해당하는 이들의 패덕함이나 살해하는 자의 정당함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대신 테러가 소설의 모방범죄임이 밝혀지고 나서 냄비 끓듯 흥분하는 여론의 반응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소설이 왜곡된 욕망을 만들어내는 체제에 대한 도전이라고 규정한 T의 실제 테러는 10년 전 소설 속 테러보다 위협적이지 않다. 극단적인 경고가 사회에 먹혀들지 않자 눈보라 속에 조용히 사라지는 뒷모습이 오히려 애처롭다.
이것은 혹시 압구정동이란 응징의 과녁이 지금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90년대초 체제가 만들어낸 욕망의 통조림 공장(유하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으로 가야 한다6)에서 생산된 댄디들의 집합소가 지금은 강남 학생들이 모이는 저잣거리가 되었기 때문일까.
지금,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2권), 이순원 장편소설, 청어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