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모래시계 검사들의 유전

모래시계 검사는 없다. 오직 슬롯머신 사건 수사 검사가 있을 뿐이다.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모래시계 검사란 말에 보인 반응이다. 모래시계는 1995년초 방영된 SBS의 인기 드라마중 하나다. 박상원이 강우석 검사, 최민수가 조직폭력배 박태수, 고현정이 재벌 딸 윤혜린으로 나와 열연했다. 강우석 검사의 실제 모델이 1993년 슬롯머신 사건의 주임검사였던 홍준표 의원이다. 당시 사건 수사를 지켜본 김종학 SBS PD와 송지나 작가는 검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를 만들겠다며 홍 검사에게 조언을 부탁했고 홍 검사는 제작팀에게 자신의 성장과정과 수사 에피소드를 소개해줬다고 한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사정태풍이 몰아쳤다.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의 홍준표 검사 등은 슬롯머신 업계의 대부 정덕일 씨와 그를 비호한 조직폭력배, 정치인, 검찰의 커넥션을 파헤쳤다. 이 사건으로 6공(노태우 정부)의 황태자였던 박철언 전 의원, 엄삼탁 전 안기부 기획조정실장, 이건개 전 대전고검장 등이 구속됐다. 홍 검사는 검찰 고위층 등의 압력에도 이들을 구속하는 기개를 보였다.

서울지검 강력부에는 당시 조직폭력팀과 마약팀이 있었다. 홍 검사(사시 24회)는 같은 조직폭력팀의 김홍일 검사(사시 24회)와 함께 사건 수사를 주도했다. 정선태 검사(사시 23회)는 마약팀이었으나 조직폭력팀에 가세해 수사기록 정리를 도왔다. 이들 세 사람은 요즘도 가끔 만나 술잔을 기울인다.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사시 30회)도 막내로 이 모임에 더러 끼었다. 그는 강력부 소속은 아니었지만 공인회계사 자격을 갖고 있어 계좌추적을 돕기 위해 수사팀에 가세했다.

홍 검사는 이후 검찰 고위층에 밉보여 한직을 전전하다 옷을 벗고 1996년 국회에 입성했다. 김 검사는 대검 중수부장 자리에 올랐다. 정 검사는 2006년 서울고검 검사로 밀려나 끝인가 했으나 이명박 정부에서 법제처장으로 임용됐다. 은 검사는 2004년 검찰을 나와 한나라당 정치인으로 변신해 이명박 정부에서 감사위원이 됐다. 저축은행 비리로 모래시계 검사들 사이의 관계가 껄끄러워졌다. 김 중수부장은 부산저축은행 브로커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은 전 감사위원을 구속했고 정 처장도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다. 거악()과 싸웠던 검사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기가 민망하다.

송 평 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