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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가 134보루? 한번 열어봅시다

Posted November. 04, 2006 03:22   

배가 들어옵니다.

3일 오후 2시 부산세관 종합상황실. 부산세관 최규완 감시국장은 대형 스크린으로 부산항 곳곳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72개의 분할화면을 지켜보다가 한 CCTV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배 한 척이 부산항 3부두 37선석()으로 들어왔다. 북한 나진과 부산항을 매주 한 차례 오가는 국내 유일의 남북 정기 운항선 추싱호였다. 세관원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최 국장은 출동명령을 내렸다.

추싱호(2000t급)는 마약과 위조담배를 제3국에 보내기 위해 부산항에 들여왔다가 7차례나 적발된 적이 있다. 북한 핵실험 이후 미국은 추싱호 등 북한을 오가는 배를 감시하기 위해 한국 정부에 핵물질 이전 여부를 감시할 수 있는 방사능 탐지장비를 부산항에 설치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기자는 국내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추싱호에 승선해 검색 과정을 살펴보고 선원들을 만났다.

담배는 반입 금지=부두 상황에 따라 정박하는 일반 선박과 달리 추싱호는 부산항에 들어오면 항상 3부두 37선석에 정박해야 한다. 추싱호는 부산세관이 지정한 중점 감시 선박으로 지정돼 있다.

추싱호가 도착하자마자 부산세관 감시국 소속의 입출항수속조 2명과 선박검색조 2명이 배에 올랐다. 해양경찰청 소속 경찰 2명도 동행했다.

이들은 서류로 신고한 선원과 물품이 실제와 일치하는지 확인한 뒤 19개 선실과 기관실, 조리실 등을 손전등과 드라이버를 들고 샅샅이 뒤졌다.

담배가 134보루나 있어요? 한 번 열어봅시다.

선박검색조 세관원 2명이 물품 목록을 본 뒤 중국 선원에게 담배 창고를 열라고 지시했다.

한 선원이 담배들은 팔려는 게 아니라 선원들이 항해 도중 피우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세관원은 담배 상자를 일일이 열어 확인한 뒤 봉인 조치를 명령했다. 배가 출항하기 전까지 물건을 꺼내 쓸 수 없도록 한 것. 출항 직전 세관원이 다시 물품을 확인한다.

북한 나진항이 더 무서워=추싱호는 중국과 한국 민간 합자회사인 동룡해운이 운영하고 있다. 선원은 모두 중국인이다.

추싱호가 나진에서 부산항까지 오는데 보통 48시간이 걸린다. 매주 한 번 왕복하고 부산항에서 12시간 정도 정박해 있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매주 이틀 정도 머문다.

추싱호 1항해사 공웬보(32) 씨는 북한에 머물러도 북한 주민들을 절대 만날 수 없다고 말했다.

공 씨에 따르면 북한에 도착하면 부산에서처럼 북한 세관원들의 엄격한 검색을 받는다. 공 씨는 북한에서는 더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더 세세하게 선실을 수색한다고 말했다. 북한 군인들이 총을 들고 추싱호를 감시하기 때문에 선원들은 출항할 때까지 항구를 떠날 수 없다.

공 씨는 2주에 한 번 식료품을 사기 위해 선원 한 명이 시장에 가긴 하지만 북한 보위국 직원이 늘 동행한다고 말했다.

선실 검색이 끝나자 추싱호가 싣고 온 컨테이너 71개와 벌크 화물 62t에 대한 화물 검색이 시작됐다. 건대구포, 건버섯, 건새우, 호박 등 북한 농산물이 주로 실려 있었다.

일반 선박의 경우 전체 컨테이너의 2% 정도를 선별해 X선 검사를 하지만 추싱호는 30% 이상 검사한다. 이날은 71개 중 19개 컨테이너에 대해 X선 검사를 했다. 세관은 북한 핵실험 이후 검사비율을 10% 이상 높였다.

더 철저한 검색을=동룡해운 부산사무소 김창진 소장은 마약과 위조담배 밀수선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오히려 검사를 더 철저히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추싱호는 단순히 물자를 운송할 뿐 선적 내용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 소장은 벌써 3년 째 적자를 보고 있다며 수입 업체들이 북한 핵실험 이후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빨리 물자를 운송하려고 해 지금은 화물이 약간 늘었지만 조만간 상황이 어려워질 것 같다고 걱정했다.

부산항에는 아직 폭발물이나 방사능을 선별할 수 있는 검사 장비가 없다. X선 검사로 마약이나 위조담배 등은 적발할 수 있지만 핵무기 등을 숨겨 들여올 경우 적발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동정민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