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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 통일한국 향한 재도약의 길목에 섰다

광복 70년, 통일한국 향한 재도약의 길목에 섰다

Posted January. 01, 2015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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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식민지의 시인 이육사는 1945년 발표된 유고시 광야를 중국 베이징 감옥으로 압송돼 가는 기차 안에서 구상했다. 세계의 변화에 문을 닫아걸어 나라를 빼앗긴 채 눈 내리고 매화 향기 아득해 누구도 해방을 예상하지 못했던 시절,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린 부모세대가 있어 우리는 오늘 광복 70주년 아침을 맞았다.

일제 강점기 35년에 해당하는 세월이 두 번이나 지나갔다. 우리처럼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동시에 분단된 독일은 45년 만에 재통일을 이루고 올해 재통일 25주년을 맞는다. 30년 뒤면 광복 100주년이다. 그 안에 대한민국은 세계사를 주도하는 선진국으로 통일 한반도의 번영을 누릴 것인가. 아니면 분단 상태 그대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전철을 밟다가 다시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릴 것인가.

우리에게도 분단 70년을 극복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중반 김정일의 고난의 행군 시기를 비롯해 625 전쟁 이후 반세기만에 우리에게 통일을 앞당길 기회가 몇차례 있었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에서 시작돼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의 대북지원정책이 결과적으로 북핵과 미사일 위기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기회를 내버려두니 오히려 위기가 됐다.

독일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통찰했듯 독재는 자기 파괴의 요소를 스스로 배양한다. 북한은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심한 군사적 가분수 사회다. 이런 사회는 자기 힘으로 존속할 수 없다. 김정은은 지난해 말 김정일의 3년 탈상을 계기로 외부지원을 얻기 위해 대화국면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북한에 대한 모든 지원은 분단 시절 독일이 그랬듯이 북한 주민의 자유를 신장하는 것과 긴밀히 연결해야 한다. 작년 1월 통일대박을 말하고도 남북관계에서 진전을 보지 못한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안보를 바탕으로 분단 70년을 마감하고 신뢰와 변화로 북한을 이끌어내 통일의 길을 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핵 없는 한반도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북의 도발에는 강하게 대처하되 대화와 교류 협력에는 과감하게 손을 맞잡아야 할 것이다.

해방 100년을 분단된 상태로 맞지 않으려면 미국과 중국의 협조가 유지되는 가운데 한국과 중국 일본 사이에 신뢰가 필수적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2015년 세계대전망(The World in 2015)에서 민족주의 회귀를 예상한 것처럼 세계적 흐름은 동북아에 먹구름을 예고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구매력평가기준 국내총생산(GDP)에서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라 아편전쟁 이전 중화()의 지위를 회복했다. 중국은 신형 대국관계를 내세우며 미국과의 군사적 관계 재설정을 추진 중이다. 미국이 일본을 앞세워 중국을 견제하는 가운데 한국은 일본에서 멀어지고 중국에 접근하면서 세력 균형이 흔들린다. 한국과 중국의 반일()감정, 일본의 혐한()혐중() 분위기에는 맹목적 국수주의의 기운까지 느껴진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맞부딪히는 한반도, 이제는 한국이 지정학적 운명을 극복하고 동북아의 중심축으로서 주변 열강을 아우르며 외교와 안보에 빈틈이 없어야 한다.

50년 전 한국 정부는 오로지 국익을 위해 숱한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과의 미래지향적 관계를 열었다. 개인의 관계에서도 그렇듯 국가간 관계에서도 가해자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관계 개선이 이뤄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언제까지 과거사에 발목이 잡혀 현재와 미래의 실익을 포기할 순 없다. 위안부, 교과서 등 과거사 문제와 안보, 경제 등 실리적 문제를 과감히 분리하는 것이 현실적 방안이다. 한일 정상회담이 아니어도 한중일, 한미일 다자 간 정상회담을 통해 일본을 우리 쪽으로 끌어들일 방안은 얼마든지 있다.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는 올해, 성숙한 창조외교로 한일관계를 재정상화 할 책임이 박 대통령에게 있다.

북한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가 이전보다 소원해졌다고는 하지만 북한을 쉽게 버리진 않을 것이다. 다만 군사동맹보다 경제발전을 중시하는 중국에게 북한은 점점 더 거추장스런 존재가 되고 있다. 중국에게 한국 주도의 통일이 중국의 이익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충분한 신뢰를 심어줘야 한다

새해 박 대통령은 집권 3년차를 맞는다. 대통령 임기 중 올해는 전국 단위 선거가 없는 유일한 해다. 내년은 총선이 있고 후년이면 벌써 대선이다. 2015년은 박 대통령이 국내 정치를 안정시키고 경제 체질을 개혁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나라를 바꾸려면 박 대통령 자신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게 이 정권이 처한 숙명이다. 정윤회 문건은 검찰 조사에서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럼에도 국민 다수는 문고리 권력 3인방에 의혹을 거두지 않는다. 납득할 수 없는 인사가 계속된다면 대통령에 대한 불신은 더 커질 것이다. 저녁에는 보고서만 읽고 있지 말고 각계의 현명한 인사들을 만나 얘기를 들으라. 한 걸음 물러나서, 한 단계 높은데서 봐야 길이 보이는 법이다.

올해도 세계는 민주주의와 정치 엘리트에 대한 회의, 포퓰리즘의 발호로 어지러울 듯하다. 이 가운데 앞서가려면 무엇보다 절박한 것이 국가 개혁이다. 대통령을 포함해 국가라는 공조직을 사유화하는 공직자는 국가의 암적() 존재일 뿐 아니라 역사의 중죄인임을 알아야 한다. 올해 독립 50주년을 맞는 작지만 강하고 효율적인 나라 싱가포르에서 배울 바가 많다. 공직사회 개혁과 함께 국민이 내는 혈세를 그들이 함부로 쓰지 못하도록 세금개혁, 재정개혁이 필요하다. 올해 창간 95주년을 맞는 동아일보는 2015년 국민의 세금이 새는 일이 더는 없도록 감시하는 연중 캠페인을 펼칠 예정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100개가 넘는 독립국이 새로 생겨났지만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룬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70년 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룬데 이어 삼성 스마트폰 등 첨단 정보테크놀로지(IT)와 케이팝 등 한류()에 힘입어 선진국 문턱까지 왔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지난해 분위기가 변했다. 세월호 참사와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은 한국 자본주의의 천민적 모습을 세계 앞에 적나라하게 노출시켰다. 재벌과 재계 지도자들은 시장경제를 지키고 지난해와 비슷한 3.5%의 경제성장률을 올리기 위해서도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제 살을 깎는 구조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세계경제는 2014년보다 약간 빠른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달러강세와 유가하락, 디플레이션의 공포는 세계적 현실이지만 그 중에서도 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나라는 정쟁과 규제만능에 빠져 있다는 것이 공통적이다. 낡은 수구좌파 이념, 지긋지긋한 정파 갈등이 혁신과 개혁, 청춘과 미래를 가로막는 구태가 이 나라에 더는 없어야 한다. 그래야 일본 같은 장기불황을 피해 선진국으로, 통일 한반도로 하루라도 서둘러 다가갈 수 있다.

70년은 긴 세월이다. 조선 왕조는 개국 70년에 세종대의 전성기를 넘어 성종대의 두 번째 전성기를 향하고 있었다. 지금 분단은 한민족의 온전한 자기실현을 가로막고 있다. 위성에서 보면 한반도의 북쪽은 일제 강점기보다 나을 것 없는 어둠이 깔려 있다. 늦어도 광복 100년까지는 민족과 국토의 분단을 극복하고 한반도 전체에 골고루 빛이 넘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올해가 그 새로운 시작이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