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당대의 정권이 희망을 보여줘야 표를 던진다. 브라질 국민은 지난달 31일 대통령 선거에서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의 지명한 지우마 호세프 후보에게 몰표를 몰아줬다. 2일 열린 미국 중간선거의 분위기는 노-바마!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년 전 변화를 내걸고 당선됐으나 일자리도 희망도 주지 못했다. 분노한 미국인들은 등을 돌렸다.
2007년 말 우리나라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실망과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끓어오른 용광로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좌파정권에서 방향을 틀어 경제를 살려내겠다는 희망을 제시해 531만표의 압도적 차이로 승리했다. 정적들로부터 실현성 없는 구호라고 공격받았던 747(7% 경제성장, 1인당 국내총생산 4만 달러, 7대 경제대국)에도 국민은 기대를 걸었다.
1930년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제를 물려받은 오바마 대통령은 대규모 경기부양책과 구제금융지원 같은 재정투입을 강행했지만 미국인이 가장 원하는 일자리를 만들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만의 개혁 어젠다에 매달려 경제에 전념하지 않는다는 국민의 원성을 샀다. 급기야 재계에서 대통령의 개혁정책이 경제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핵심 공약인 건강보험개혁과 금융개혁 법안이 규제를 양산하고 불확실성을 키워 투자의욕을 꺾는다고 비난했다. 기업들은 돈을 쌓아두고도 투자하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이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재정만 투입하면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공공일자리가 많은 줄 알았다는 고백했다. 만일 그 돈이 민간에 돌아가 소비를 하고 그 소비로 인해 기업이 생산을 늘리고, 시장이 스스로 작동할 수 있게 했더라면 지금쯤 미국 기업들의 투자심리는 활활 타올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을 대공황에서 구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여러분의 정부는 여러분의 능력을 확신합니다라며 희망과 확신을 준 지도자였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경기가 숨을 돌린 뒤 복지를 확대하는 사회보장제도를 내놓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위기를 놓칠 수 없다며 이념과 이상을 실용보다 앞세웠다. 미국만큼의 자원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만한 부를 누리지 못하는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국민에게 처음으로 자부심을 안겨준 지도자다. 트럭운전사인 엘손 고메스는 룰라는 우리의 잠재력을 우리가 믿을 수 있게 해준 대통령이라며 우리나라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나라이고, 브라질이 진짜 내 나라라는 진정한 느낌을 갖게 해준 대통령이라고 칭송했다.
룰라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은 경제성장과 함께 빈부차를 줄였다는 점이다. 20032008년에 빈곤층을 43% 줄이고 3200만명을 중산층에 합류시켰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사설에서 가난한 사람의 수입이 더 큰 폭으로 늘도록 만들어 브라질을 기회의 나라를 만들었다며 룰라는 브라질의 모두를 잘 살게 만든 대통령이라고 평가했다.
브라질의 대표적 빈곤탈출 프로그램 볼사 파밀리아는 스스로의 힘으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종자돈을 준다는 개념이다. 엄마에게 현금을 주되 반드시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예방주사를 맞도록 했다. 덕분에 복지담당 공무원이 늘어나거나 복지비용 횡령사건 같은 중간에서 새는 돈을 줄일 수 있었다. 전임 우파 대통령이 시작한 복지제도지만 이념이 다른 후임이 뒤집지 않고 그대로 진행한 것도 룰라 대통령의 업적으로 꼽힌다.
룰라 대통령은 노조 지도자 출신이지만 노조 편에만 서지 않았다. 기업에 한껏 자유를 주고 민영화를 촉진했으며 초긴축정책과 외자유치로 인플레를 진정시켜 브라질을 경제규모 세계8위로 키워냈다. 올해 성장률이 7%, 실업률은 2002년 이래 가장 낮은 6.7%였다. 차기 월드컵(2014년)과 올림픽(2016년)까지 유치한 브라질은 지금 축제의 나라 같다.
10년 후면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그 안에 우리가 이룩해야 할 선진국을 상상해보면 가야할 길을 알 수 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보상을 받는 나라가 공정한 사회다.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받쳐주는 사회안전망은 필요하지만 정부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모든 국민의 인생을 책임져주는 나라는 복지병에 걸린다. 한국의 여당과 야당의 지도자들 은 브라질과 미국을 보며 어떤 교훈을 얻을지 궁금하다. 2012년 대한민국은 어떤 대통령을 뽑아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