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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경질도 인사다

Posted August. 07, 2010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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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2월 우르과이라운드(UR)협상 타결로 쌀 개방이 결정돼 민심수습이 필요했을 때 김영삼(YS) 대통령은 황인성 총리를 사퇴시키는 방식으로 정면 돌파했다. 1997년 초엔 한보사태와 차남 현철씨 비리로 위기에 몰리자 3월에 이수성 총리를 교체했다. 취임후 보름도 지나지 않은 1993년 3월7일 YS는 하나회 출신 군부 실세였던 김진영(육사17기) 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육사 19기) 기무사령관을 전격 경질했다. 516 이후 30여년간 한국사회를 쥐락펴락하던 군부의 퇴조와 군내 특정 인맥의 청산을 의미했다. 인사를 통해 대국민 메시지를 보내는 YS식 인사는 나름대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임기를 7개월 남겨둔 강희락 경찰청장이 5일 갑자기 사퇴의사를 밝힌 배경을 둘러싸고 논란이 분분하다. 강청장은 사퇴배경으로 집권 후반기 국정쇄신을 위한 새로운 진용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되고 경찰후진을 위해서라고 밝혔지만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 서울 양천경찰서 가혹수사, 아동성범죄 빈발, 하극상 사건 등 난맥상으로 사실상 경질에 가까운 용퇴라는 해석도 나온다. 여권 일각에선 4대 권력기관장의 특정지역 편중 시비를 완화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62지방선거 패배 직후, 세종시 수정안의 국회 부결 직후 등 3차례 사의를 밝힌 바 있다. 이 대통령의 수용 여부가 모호한 상태에서 결정이 미뤄지다가 728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한 것을 계기로 사퇴를 공식 표명했다. 이 대통령은 좀 더 같이 일하고 싶어 여러 번 만류했지만 국민과 나라를 위한 충정에서 사의를 표명해 매우 안타깝게 여긴다며 수용했다. 결국 정 총리의 교체가 세종시 부결 때문인지, 임기 후반 국정면모 쇄신을 위해서인지가 불분명해졌다.

경질도 중요한 인사()다. 교체의 의미를 객관적으로 알 수 없는 인사라면 메시지 측면에서 성공적인 인사라 할 수 없다. 주요 인사를 슬그머니 교체하면서 명확한 의미를 설명하지 않는 사례가 반복된다면 인사의 대국민 호소력, 설득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인사의 뜻이 무엇인지 인사권자가 투명하고 명료하게 밝히는 것, 이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대국민 소통이다.

박 성 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