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1호 숭례문이 전소된 지 10일 만에 서울 도심의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발생한 화재는 공직 사회에 흐르는 안전 불감증의 심각성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줬다. 정부중앙청사에는 숭례문과 똑같이 스프링클러 등 기본적인 자동 소방설비조차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최양식 행정자치부 1차관은 21일 중앙청사가 1970년에 완공된 오래된 건물이라 스프링클러가 없다며 화재 경보 감지 장치를 통해 화재에 대비해 왔다고 말했다. 특히 1999년 7월에도 중앙청사 4층에서 불이 나 사무실 한 칸을 태웠지만 9년이 지난 현재나 그때나 소방 설비나 대책에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시설도 의식도 안전 불감증에 걸린 행정 1호 건물
청사 관계자는 당시 화재 직후 스프링클러 설치가 검토되기도 했지만 리모델링 수준의 공사가 필요해 공사가 보류됐다고 말했다.
화재 대응 또한 신속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화재를 처음 목격한 방호원 김모(38) 씨는 동료 방호원들과 주변 소화기로 자체 진화를 시도하다 10분 뒤에야 119에 신고했다.
소방 관계자는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화재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라며 신고를 바로 했다면 피해를 줄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평소 화재 예방 관리에 취약했던 공무원들의 안이한 의식 역시 화재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청사관리소가 5일 자체적으로 실시한 설 연휴 특별방화 점검 결과에 따르면 청사 내 일부 사무실에서 불량 전열기와 전기방석을 사용하는 등 화재 예방 조치가 미흡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당시 점검을 실시했던 방화관리자는 사무실을 다니며 전기제품 전원과 플러그를 확인했는데 전원이 꺼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고, 금지된 전기방석과 소형 전열기도 적지 않아 모두 회수했다고 말했다.
청사 관리소 측은 화재 예방을 위해 청사 내 개인 온풍기 등 전열기 사용을 금지하고 있지만 직원들의 협조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국정홍보처의 한 직원은 오후 6시면 중앙난방이 꺼지는데 워낙 오래된 건물이라 찬바람이 잘 들어온다며 많은 직원들이 야근을 할 때는 개인용 전기난로를 사용한다고 전했다.
화재 원인은 누전 또는 과열
이날 현장 감식을 벌인 경찰과 소방당국은 누전이나 전열기구 과열을 유력한 화인으로 보고 있다.
종로소방서 관계자는 사무실에서는 직원들이 전열기구를 켜두고 퇴근하는 바람에 불이 나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화재 역시 전열기구 과열이나 담배꽁초로 인한 실화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불이 난 504호 국무조정실 사무실에서 간이난로를 발견했다.
전기안전공사도 화재 현장에서 누전차단기가 작동한 사실을 확인했다.
공사 측은 화재가 발생한 뒤 차단기가 제대로 작동해 전원을 끊은 사실을 확인했다며 차단기가 작동했다는 것은 누전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경찰도 방화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며 이날 0시경 퇴근한 직원과 다른 국무조정실 직원들을 불러 자세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