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엔 폭우로 8월 29일 순연돼 개최되기는 했지만 제헌절 만찬은 한국의 법질서와 체제 유지에 상징성이 있다. 입법 사법 행정부의 수반과 헌법기관장이 제헌 헌법을 제정한 날에 한자리에 모인다는 것 자체가 적지 않은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11시 50분경 헌법재판소장과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노 대통령이 제기한) 헌법소원의 당사자이자 주무기관이기 때문에 참석을 부담스러워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임 국회의장은 두 분이 빠진 채 대통령을 모시는 것이 결례가 될 것 같다며 참석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해 대통령이 수용했다고 설명했다. 이 소장은 16일 오후, 고 위원장은 17일 오전 참석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에선 이 소장과 고 위원장의 불참 통보에 대해 대통령에 대한 결례라며 못마땅해하는 기류가 감지됐다. 하지만 일선 판사들 사이에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1998년 제정된 법관 윤리강령 4조는 법관은 재판 업무상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당사자와 대리인 등 소송 관계인을 법정 외 장소에서 면담하거나 접촉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앞서 노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선관위가 자신에 대해 선거중립의무 위반이라고 결정을 내린 데 대해 헌재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따라서 대통령-선관위원장-헌재소장이라는 헌법적 관계가 헌소 사건의 청구인-피청구인-주심재판관이란 소송인 관계를 띠게 된 것. 한 중견 판사는 선거법에서 죄질을 따질 때는 행위의 반복성을 가장 우선적 기준으로 삼고 있는데, 노 대통령은 반복했을 뿐만 아니라 소송 기간에 피청구인(중앙선관위)을 협박하기까지 했다며 세 사람은 절대 밥을 먹을 수 없는 관계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만찬 취소를 발표한 직후 노 대통령은 청와대 브리핑에 헌법과 선거법 등 각종 법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내용의 A4용지 11장짜리 글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