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가 17명으로 밝혀진 뒤 일본 내에서는 북한 때리기가 유행이지만 외교행태에 관한 한 북한과 일본은 너무 닮았다. 상대의 선의()를 뒤통수치기로 되갚는 습성 때문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관방장관 시절 군위안부를 허구이며 언론이 만들어 낸 얘기라고 부정했다. 외할아버지이자 A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인식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 것이다. 하지만 그가 총리가 된 뒤 주변국들은 비판을 자제했다. 변화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그는 취임 직후 대()아시아 외교를 강화하는 등 실용주의적 행보를 취했고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1993년 고노 담화를 계승하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런 그가 31절 88주년 기념일인 1일 (일본군이나 정부가) 군위안부를 강제 동원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말함으로써 이런 기대를 한순간에 저버렸다. 개인만 그런 것이 아니다. 10년 전 그가 주도했던 자민당 내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의원 모임은 고노 담화를 수정하는 결의안 제출을 추진 중이다. 최근엔 미국 하원의 군위안부 결의안 채택을 막기 위해 워싱턴 로비스트들이 총동원된 가운데 총리보좌관까지 미국에 보냈다.
취임 몇 개월도 안 돼 아베 총리가 본색을 드러낸 데 대해 일본 내에서는 정치 생명이 걸린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우익성향의 표를 결집하려는 의도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그때그때의 이해에 따라 신의를 저버리고 표변하는 행태가 계속되는 한 일본은 주변국의 존경을 받는 대국()이 될 수 없다.
아베 총리는 취임 후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을 외교구호로 내걸었다. 주로 북한을 겨냥한 구호였지만 20만 명의 여성이 일제에 의해 성노예라는 반()인륜적 범죄에 희생된 사실을 외면한 채 17명의 자국민 피해만을 내세워선 공감을 얻기 어렵다. 자신의 누이나 딸이 그런 일을 겪었다고 해도 증거가 없다는 말로 외면해버릴 것인가. 보편성을 결여한 편협한 자기중심적 논리로는 섬나라 근성 못 버린다는 조롱을 면할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