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민연금제도의 최대 맹점으로는 재정 불안과 함께 울타리 밖에 존재하는 사각지대가 꼽힌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에 참가한 야당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진정한 연금 개혁이 될 수 없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사각지대 문제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전체 국민연금 가입 대상자 3명 중 1명이 미가입자다. 특히 봉급생활자를 제외한 지역 가입자 중에서는 2명 중 1명이 국민연금제도의 바깥에 있다. 이들 대부분은 저소득층이다.
현행 국민연금은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설명대로 적지만 지금 내면, 나중에 많이 타게 되는 혜택구조다. 당연히 당장 먹고살 게 없는 빈곤층은 미래의 혜택에서조차 소외되고 있는 셈이다.
순천향대 김용하(금융보험학) 교수는 국민연금 미가입자의 대부분은 노후에 연금이 꼭 필요한 잠재적 빈곤층이라며 이들을 빼놓고서는 소득재분배, 사회보장이라는 국민연금제도의 기본 취지 자체가 의미를 잃는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 가입율은 36%대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김태철(가명38경기 고양시) 씨는 일당이 3만6만 원으로 한 달에 버는 돈은 100만 원 남짓이다. 4인 가족 기준 최저 생계비인 117만422원에도 못 미친다. 그나마도 계절에 따라 소득이 불규칙해 가계를 꾸리기가 만만치 않다.
김 씨는 현행 제도대로라면 국민연금에 가입해 한 달에 8만1000원 정도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내야 한다.
김 씨는 정부에서는 지금 착실히 내면 나중에 낸 것보다 4, 5배 타 갈 수 있다고 선전하지만 지금 벌이로 네 식구 먹고살기도 빠듯한데 8만 원을 어떻게 내느냐고 어이없어한다.
이처럼 없는 사람에게 국민연금은 그림의 떡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03년 12월 기준으로 국민연금 가입 대상자는 1688만여 명. 이 가운데 국민연금에 가입한 사람은 1112만여 명으로 65.8%다. 나머지 576만 명(34.1%)은 노후에 아무런 연금도 받지 못한다.
영세사업자나 비정규직 근로자들 대부분은 국민연금에 관심조차 없다.
부산에서 철공소를 운영하는 박세원(가명39) 씨는 직원 6명을 고용하고 있다. 이 가운데 국민연금 등 4대 보험에 가입한 직원은 고작 1명.
그는 직원들이 국민연금 가입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월급이 120만 원 남짓인데 10만8900원 정도의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박 씨는 회사가 일부를 부담한다고 했더니 그 돈을 월급으로 더 달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들 영세 자영업자, 일용직 근로자, 파견용역 근로자 등은 노후에 빈곤층으로 전락하기 쉬운 서민층이라는 점이다.
비정규직 근로자 548만여 명 가운데 국민연금 가입자는 200만 명 남짓으로 가입률이 36%대에 불과하다.
5인 미만 영세 사업장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전체의 7.8%만이 국민연금에 가입돼 있어 노후를 기약할 수 없다.
국민연금관리공단 관계자는 당장 연금 보험료를 낼 형편이 안 되는 사람에게 보험료 납부 의무를 부과시켜 놓고 3040년 뒤 노후를 보장해 주겠다는 말은 앞뒤가 안 맞는다고 털어놓았다.
사각지대는 현실 문제
사각지대 문제는 절박한 과제이기도 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2005년 현재 60세 이상 고령인구 중 국민연금을 받지 않고 있는 비율이 78%. 노인 10명 중 8명이 사각지대에 있으며 현행 제도를 유지하면 4050년이 지나도 노인 3명 중 1명은 국민연금의 울타리 밖에 남게 된다는 분석이다.
국민연금연구센터 조준행 연구위원은 국민연금 급여를 금리로 계산하면 정기예금 금리보다 2배 가까이 높은데 이런 점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가입을 기피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최저 생계비 수준의 소득에 그쳐 정말 보험료를 낼 형편이 안 되는 빈곤층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야당이 주장하는 기초연금제 외에도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내놓은 효도연금도 그 중 하나다.
정경배() 복지경제연구원장은 납부 실적이 전혀 없더라도 최소한의 연금은 지급하는 최저연금제 도입도 적극 검토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선진국은 사각지대 문제 없어
한국의 국민연금과 같은 노후연금을 일찌감치 도입한 선진국에서는 사각지대 문제가 거의 없다.
최소한의 노후생활을 보장하는 기초연금을 도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스웨덴처럼 세금으로 거둬 노인층에게 나눠 주든, 영국처럼 보험료 방식으로 기초연금제도를 운영하든 기본 취지는 같다.
국내 국민연금 관련 대부분의 학자들도 장기적으로는 한국도 기초연금제도를 도입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