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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넣으면 우르르 몰려와요

Posted December. 10, 2005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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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낮 12시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앞. 기자는 이곳에서 빨간 구세군 잠바를 입고 6시간 가까이 종을 울리면서 자선냄비 모금활동 일일 자원봉사를 했다.

종만 흔든다고 모금활동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무슨 말로 사람을 불러 모을 수 있을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황 사관은 불우이웃을 도웁시다란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이들이 내가 불우이웃인데 왜 나는 도와주지 않느냐고 항의 아닌 항의를 하는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

구세군이 기부를 권유하는 말은 특별히 정해진 게 없다. 사관 개개인의 취향과 성격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황 사관은 사랑이란 단어를 유난히 많이 썼다.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데 이만한 단어가 없기 때문.

기자도 용기를 내 마이크를 잡았다.

날씨가 추워지고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분들에게 추운 날씨만큼 참기 힘든 고통은 없습니다. 여러분의 작은 정성이 그분들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마지막에 사랑을 강조한 탓일까. 교복을 입은 남자 고교생이 수줍게 다가왔다.

300원밖에 없는데 이거 넣어도 돼요?

정말 소중하게 쓰겠다고 하자 그 학생은 동전을 냄비에 털어 넣더니 도망치듯 달아났다.

모피코트를 걸친 아주머니도 왔다. 얼마나 기부할까. 잔뜩 기대했지만 명품 핸드백 속에서 나온 것은 300원이었다. 7일에는 50대 여성이 1만 원짜리 지폐 100장을 넣고 갔다고 들었지만 기자는 그런 천사를 만날 수 없었다.

차림새와 기부액은 결코 비례하지 않았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사람들보다 학생과 수수한 옷차림을 한 서민들의 인심이 더 훈훈했다. 한 중학생은 자선냄비 앞에서 머리를 긁적이다가 사탕을 내밀기도 했고 현금이 없는 서민들은 지갑을 뒤져 각종 상품권이나 전화카드, 복권을 냄비에 넣기도 했다. 상품권이나 전화카드는 구세군 사관들이 자신의 돈으로 사들여 현금화한다. 복권 당첨금도 기부금으로 사용되지만 지금까지 대박을 터뜨린 복권은 없다고 구세군 관계자가 귀띔했다.

한 사람이 돈을 넣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사람의 작은 정성이 주위 사람들에게 공감을 일으켜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것이다.

오후 6시경 자원봉사를 마칠 때가 되자 반근 정도인 종이 천근처럼 느껴졌다. 황 사관은 온종일 추위에 떨면 온몸에 파스를 붙이고 앓아눕는 게 예삿일이라며 몸은 힘들지만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일 돈이 차곡차곡 쌓이는 보람에 하루도 봉사를 거를 수 없다고 말했다.



염희진 salthj@dogna.com